수도관이 없는 꽃집. 꽃물통에 물을 갈아야 하는 날이다. 잠실역 8호선에서 2호선으로 가는 길목, 지하도 바닥의 수도함 앞에 쭈그려 앉는다. 종아리 높이쯤 되는 좁은 직사각형 구멍 속, 발목 높이에 수도관이 숨어 있다. 큰 물통을 기울여도 물은 삼분의 일밖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물통에 물을 받아 네 개의 큰 물통에 옮겨 담는다. 헛-헛- 리듬을 중얼거리며 팔과 허리를 굽혔다 폈다 물을 퍼 나른다. 그러다 그만 작은 물통이 손에서 미끄러진다. 찰나에 물이 공중으로 솟구친다.
사람들 틈에서 얼굴과 팔, 가슴으로 후드득 쏟아진다.
그야말로, 물꽃축제다.
휴-다행. 그래도 바닥에 쏟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도. 온몸이 물범벅 된 채로 나머지 물통에 물을 기른다. 다 채운 물통을 끌차에 실어 파트라슈가 우유를 나르듯 덜덜. 끌차를 끌고 물통과 함께 꽃집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내 앞에서 갈라진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길이 열린다. 꽃집에 도착해 물통을 내려놓는다. 물이 가득 찬 걸 보니 쌀독에 쌀을 가득 채운 듯 든든하다.
후-됐다 됐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