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퇴계이황
4월의 어느 날, 관뒀던 플라워카페에 다시 출근하던 아침이었다. 아빠는 감기에 걸리신 건지 이불속 번데기다. 따뜻한 물주머니와 마실 물을 챙겨 드린다.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집을 나선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까지 함께 비워낸 것 같은 기분.
봄날을 달린다.
평소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익숙한 노선 대신 가락시장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 종로3가역에서 내려 종로 12번 마을버스를 탄다.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길. 새 출근이니 새 마음으로 새 출근길을 가본다.
지하철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어제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왜 부질없는 말들을 이토록 쉽게 입에 올릴까. 마흔이 되니 마음에 그물이 쳐진 걸까.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던 이야기들이 요즘은 자꾸 걸린다.
고상한 문인들의 대화를 꿈꾸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 밖으로 나가는 말들을 조금 더 신중히 고르고 싶어진다. 아무 의미 없이 소비되는 농담들, 도움도 교훈도 깨달음도 남기지 않는 말들. 말해도 말이 아닌 것 같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 대한 험담,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신세한탄, 남 잘되는 게 못마땅한 시기 질투.
그런 말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공허함과 미묘한 피로만 남는다.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싶은 걸까. 누군가에게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했던 마음을 곱씹어 보니, 그것은 결국 탐욕이라는 이름의 나에 대한 불만족이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타인에게도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더 나은, 더 멋진 내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러지 못한 지금의 나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 결핍을 타인을 통해 채우려 했고, 그 마음의 바닥에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조용히 끓고 있었다.
길가 화단에 짧뚱하게 핀 노란 민들레가 눈에 들어온다. 왜 이렇게 짧게 피었니. 마음이 쓰여 한참을 내려다본다. 커야 할 것이 크지 못하고, 자라야 할 것이 자라지 못한 것을 보면 보듬어주고 싶어진다. 나 같아서 그런가.
퇴계 이황은 말했다. 착한 사람이란 경(敬)을 통해 마음을 맑게 세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경은 유교의 핵심 개념이자, 퇴계 이황이 평생 강조한 수양의 태도다. 마음을 단단히 세워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
나는 아직 연습 중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나를 돌보는 연습,
나를 사랑하는 연습.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