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는 아픔이 따를까

by oddmavin project


아마도 무언가를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무엇 하나를 무너뜨려야 하기 때문일까.


무분별한 어휘들

생각 없는 생각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말들에 붕괴를 경험한다.


붕괴시키지 않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 남긴 말이

내게는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로 해석된다.

그래야 인간이 되니까.


시지프의 신화 속 시지프처럼 계속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이 삶이다.

비극 속에서 나의 비참함과 무기력을 느끼며

반항아가 되는 것, 고통을 응시하면서 비극적

존재로 멸시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응수.

끝없는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인간은

운명보다 우월하다.


바위가 다시 굴러 떨러 질 것이 확실한 순간도

돌을 밀어 올린다. 실패하기 위해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 그건 나다. 도로 제자리로

걸음 하는 나.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거부하는 건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의지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신의 계획대로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간다.

내 자리를 깨닫기 위해(전진하는 기분이지만)

도로 제자리라는 인식이 필요하구나.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의지와 존엄은 패배하지 않는다.

삶에서 무너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려는 마음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라는 현자들의 메시지가

나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붕괴되는 12월이다.

앙상한 가지들 틈에서

사부작사부작 붕괴되고, 붕괴된다.


제, 자리를 향해.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