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필라테스
2년 만에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처음 필라테스를 시작했던 건 2년 전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다. 출퇴근시간, 외근(광고주와의 미팅, 시장조사, 경쟁PT, 현장 촬영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의자에 앉아 엉덩이 싸움을 벌여야 했던 카피라이터의 직업병은 허리디스크. 태어날 때부터 척추가 약간 틀어져 있었던 터라 엉덩이 싸움이 관건인 직업은 건강에 독이면 독이지 득이 되진 않았다. 기약 없는 퇴근 시간과 줄어드는 수면 시간에 입사 1년 차가 되자 결국 건강(정신+심신)은 무너져 버렸다. 무너짐으로 인해 생기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부적절한 공격성을 갖게 만들었고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음주, 인스턴트 음식, 부정적인 생각, 미워하기.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부터 가장 먼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직업을 관둘까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카피라이터란 직업이 좋았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은 '무너짐을 인생의 디폴트(기본값)로 두자'였다.
필라테스는 그 무너짐으로부터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워 준 보이지 않는 조력자였다. 광고주가 언제 피드백을 줄지 모르는 5분 대기조 신세였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유일하면서 확실한 내 시간이었고, 그렇게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는 직장러에 합류하게 됐다. 워런치(워킹+런치, 점심시간에 하는 걷기 운동)가 아닌 필런치(필라테스+런치, 점심시간에 하는 필라테스)였다고 할까. 그렇게 1년간 일주일에 2번씩 회사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있는 필라테스 학원을 다녔다. 함께 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1:1 수업을 듣게 됐고 지출은 컸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된 시간만큼 건강은 회복돼 갔다. 몸이 많이 굳어있던지라 50분은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끝나고 나면 심신이 깨어나면서 개운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한계를 극복했다는 보람과 성취감도 느끼고. 퇴근 후 유일한 기쁨이었던 음주와 인스턴트를 끊지는 못했었지만 심신이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1년간 지불한 필라테스 비용이 내 연봉의 1/3에 버금갔지만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했던 비용과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을 이렇게 써먹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연의 일치로 필라테스를 한 지 1년째 되는 마지막 날이 2년 2개월간 다녔던 광고회사를 그만둔 날이었다. 의도했던 일정이 아니라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 2019년 7월 초에 여기 다 적지 못할 여러 일로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필라테스 선생님한테는 7월 중순 즈음 7월까지만 다녀야 할 거 같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먼저 7월까지만 수업을 하게 됐다고 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오묘함에 마음이 요동쳤다. 다신 못 볼 지도 모르리라는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컸지만, 무엇보다 타이밍이 그랬다. 이런 게 시절인연이란 걸까. 만남과 헤어짐에는 때가 있다는 진리 말이다. 7월 31일. 출근 마지막 날 회사에서 정리한 짐을 가지고 마지막 필라테스 수업에 갔다. 마음에 안개가 끼인 듯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툭 건들면 와르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2019년 후반기와 그 후. 팬데믹 시대에 접어든 세월은 불안하고 고독했다.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며 이직했던 광고회사에서 실패의 고배(이전 회사가 그리울 지경에 이르고 일주일 만에 퇴사)를 맞보고, 6개월간 혼자 폐인같이 지내다 정신 차리고 들어간 광고회사에서 또다시 말 못 할 여러 일들로 7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렇게 나는 팬데믹 시대에 걸맞은 고독을 일삼는 완벽한 집순이가 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나야나 모드로 과거를 곱씹는 생활은 거의 자학에 가까웠다.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내탓증후군은 멈추지 않았다. 30대 후반. 직장 실패. 인간관계 실패. 연애 실패. 결혼 실패. 집(37살이 될 때까지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실패 등등. 삼포, 오포, 칠포, 구포까지 모두 내 몫이 된 듯한 것이다. 어쩔 때는 팬데믹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고독한 집순이로 지내는데 이보다 완벽한 변명거리가 있을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패배자의 대명사다. 온전한 직업을 가져본 적 없으며 짝사랑만 했던 동성애자다. 천식으로 전 생애에 걸쳐 고통받으며 38세 이후 남은 여생을 방에서만 보내며 아무도 읽지 않는 책('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셰익스피어 이후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꼽힘)을 20년에 걸쳐 썼다. 프루스트는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힘겨웠던 시절들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혼자라 느껴지는 날들 속에서 혼자서 살아낸 날들은 생애 가장 고독한 시간이지만 가장 찬란한 시간을 영위하는 것이리라.
그간의 실패 덕분에 일을 쉬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꽃도 배우고, 커피도 배웠다. 배운 김에 자격증까지 따놓았다.(웰다잉에 이르기까지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싶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아 씁쓸하다) 더불에 나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채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나와의 사랑을 시작해보는 것이다. 남과의 연애사업보다 시급한 나와의 연애사업을.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1. 무슨 일, 생각, 결단을 내리기 전에 "이게 정말 나를 사랑하는 일일까?" 고민해 보기. 아니면 스톱!
2. 내가 스스로 나를 돌보고 보살피자. 남이 나를 돌봐주고 헤아려 줄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되면, 나를 온전히 남에게 맡기는 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포드가 말했듯 나를 스스로 만들고 다듬어 가야 하는 것이다. 나만이 나를 만들 수 있다.
3.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다. 무너진 나를 일으켜 줬던 필라테스로 다시 나를 다지고 세워보자.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무너짐이 찾아와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오늘 첫 필라테스 수업이 끝나고 근육 없고 힘없이 너털너털 걸어가는 내게 선생님 다가와 말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고. 뜨끔! 내가 새벽까지 안 자고 뒹굴거리는 건 어찌 알고. 이 새벽까지 이러고 있는 건 날 사랑하는 방법에 조금 어긋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체가 행복이기에 조금은 괜찮겠지뭐. 기분 좋은 뻐근함과 함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