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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Dec 18. 2020

엄마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꽃배우기-토피어리

12시 자정이 넘어 어렵게 잡은 택시. 기사님은 나이 지긋한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 뒷모습만 봐도 달큼한 연분홍 꽃향기가 날 것처럼 고우신. 기사님이 목적지를 물어보셨다. 택시 어플을 이용한 거라 목적질 알고 호출을 수락하신 게 아닌가? 싶어 기사님 폰화면에 안 나와요? 하고 목적지를 말씀드렸다. 기사님이 멋쩍게 웃으시며 "아... 화면이 잘 안 보여서요..." 하시는 거다. 생각지 못한 답변에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ᄅ게 한참을 말없이 가면서 소리없이 혼잣말을 시작했다. "밤늦게 하는 택시... 연세도 있으신데... 어쩌다 이 야심한 시간에 택시를 하시게 된 걸까?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을까? 이상한 손님이 타면 어쩌지 위험할 텐데... 아 근데 몸이 너무 가냘프시다." 등등 엄마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오지라퍼 모드가 된 것이다. 참을성 없는 나는 "기사님, 뭐 여쭤보고 싶은게 ᄋ는 데, 어쩌다 택시를 하시게 된 거예요?" 하고 물었다. 기사님은, "난 애들 다 키워 놓고 이제야 맘 편히 하고 싶ᄂ 것들 하면서 살아요. 솔로는 아니지만 솔로처럼 살고 있어요. 집에서 애들한테 모르는 것 물어보기도 눈치 보이고, 같이 대화 나누면서 놀고 싶어도 애들은 바쁘다고만 해요. 애들 고등학생 때까진 난 늘 필요한 존재였는데, 이제 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된 건가... 생각해서 우울하게 지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보자! 싶어서 낮에는 디자인 학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고, 자고 일어나서 이렇게 마음껏 돌아다녀요. 아이들과 남편은 밖에서 회식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지만 난 늘 내가 하는 음식만 머ᅡᆭ아요. 나 혼자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맛도 없어요. 나도 못 해본일, 하고 싶었던 꿈들을 이루며 살고 싶어서 이렇게 일ᄋ 하고 있어요."
백미러에 보이는 기사님의 눈빛에는 총기와 열정이 가득했고, 난 그 눈빛과 행복 에너지에 압도 당한 기분이었다. 비사이로 막가 실력의 수준급 운전을 즐기시는 기사님은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 듯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셨다. "나이가 들면 잘 보이지 않아 슬퍼요. 옛날에는 나도 총명했는데... 그런데 나이가 들면 좋은 점도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을 걱정 없이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안 좋은 건, 자식들한테 상처 받고, 자식들이 더 이상 날 찾지 않는다는 거예요...나한테 기대지도 않고, 나와 놀아 주지도 않고, 나한테 너무 불친절해요. 내가 우리 애들 아기 때 해줬던 것처럼, 애들도 나한테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다들 자기 일 보느라 나는 늘 뒷전이에요... 그래도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우리 애들 예쁘게 입히고 맛있는 것 사주는 게 너무 행복해요. 내 딸이 다른 애들 보다 예쁜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좋고요. 난 자식이 결혼했어도 늘 자식 생각뿐이고,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애들 생각뿐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고, 내가 불렀을 때 와주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것 사주고, 남편 눈치 안 보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 먹고, 나는 너무 좋아요. 심심하게 지내다가 밖에서 돌아온 딸한테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 딸은 바쁘다고 해요. 그 말이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팠던 상처예요... 손님은 엄마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엄마의 꿈은 한 번도 당신을 위한 적이 없다. 그저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란다. 엄마의 우주는 온통 가족뿐이고, 난 엄마의 세상이 좁고 갑갑하게 느껴져 벗어나려고 했던 심술궂은 철부지 딸이다.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도 모르는. 엄마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울엄마가 행복하시면 좋겠다.

엄마를 생각하며 만든 토피어리-엄마의 우주를 복돌이가 지켜주고 있다
토피어리는 로마시대 정원사가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에 '가다듬다'라는 뜻의 라틴어 토피어(topia)를 새겨 넣은 데서 유래. 실내외 장식품. 특히 웨딩에 많이 제작된다.
(좌)토피어리는 자연 그대로의 식물을 다듬어 여러 형태로 만든다. (우) 필러플라워인 소국을 인원수대로 나누는 중
토피어리 꽃재료-(왼쪽부터) 다정금, 유칼립투스(파블로), 오이초(오이향이 난다), 미니장미, 소국
(좌) 화기에 1/3 사이즈의 플로랄폼을 고정하고 절지류를 이용하여 1/8사이즈의 플로랄폼과 연결한다. (우) 매스플라워인 미니장미로 동그리 형태를 잡는다.
빈 공간을 필러플라워 소국으로 채운다. 반드시 동그랗게 만들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그 뒤 그린플라워 유카리 파블로, 다정금, 오이초로 빈 공간을 매워준다. 호호
잠자리 날개같은 꽃무늬 옷을 입고 토피어리와 함께 찍어봤다. 그냥.
완성된 토피어리는 엄마방에 놔두었다. 엄마방에만 들어가면 꽃향기가 가득하다. 엄마의 냄새인 것이다. 엄마의 우주 그리고 엄마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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