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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Sep 11. 2021

너란 애, 너무 힘들다

힘들 때는 힘을 내려놔도 돼지꿀꿀

"너란 애, 너무 힘들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 말은 언제 들어도 힘들다. 상대의 힘들어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이기도 하지만, 그 상대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일 때는 더 힘이 든다. 내가 힘나게 해 주기는커녕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구나.

평소 가시를 곧게 세우고 날카롭게 대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손길에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는 것이다. 괜히 했구나 싶었다. 날 힘들게 하는 이들은 여전히 날 힘들게 했다. 생각해보니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 싶었다. 그들은 내가 가시를 곧게 세우고 날카롭게 대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었다. 마음이 달갑지 않았던 것도, 기분이 언짢았던 것도, 그들은 평소에 나의 힘을 뺏는 존재들이었다.

힘들게 하는 것들과 잘해보려 아등바등하는 건.

헛수고라 생각했다. 힘내고 싶은데 힘만 빠지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헛수고 조차 헛된 노력이 아니라 생각했다. 힘이 되는 것은 힘을 뺏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으니까. 힘을 내려다 힘이 빠졌지만 힘낼 일은 언제고 생겼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뾰족하고, 예민하고, 날이 섰을 때는.

대부분 내가 힘들 때였다. 힘들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했더니 정신적으로 엉망이 돼버린 것이다. 힘들어하는 것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비난받아온 세월을 견디다 보면 비난에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비난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날 선 가시를 키우게 된다. 비난과 모함이 날 힘들게 하지 못하도록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할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지.

기대고 싶어도 기댈 곳 없는 세상은 나에게 흔들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곡예를 하는 곡예사가 되게 한다. 그 흔들림으로부터 나를 잡아주는 것은 오직 신념뿐. 그 신념이 만들어낸 가시에 대해 이해해줄게 아니라면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말할 자격이 없다. 누군가의 가시를 함부로 모함하거나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 느. 누. 구. 도.


힘들 때는 힘을 내려놔도 돼지꿀꿀.

나를 지키려고 키워낸 가시가 결국 나를 힘들게 하고 말았다. 물렁하고 여린 살에는 가시가 잘 박히지만 굳은살에는 가시가 잘 박히지 않듯, 내가 키워야 할 건 가시가 아니라 굳은살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찌를 수 없도록 단단하게. 그 단단함은 힘들 때 과감하게 내려놓는 용기에서 오는 것이었다. 뒤늦게 알았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인정하고, 힘내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면접을 보러 하루 반나절을 긴장 속에서 보내다 집에 돌아오는 길. 힘이 빠질대로 빠져 너털너털 길을 걷다 걸음을 멈췄다. 가을볕이 나뭇잎 사이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자리에 서서. 가을바람이 뿜어내는 내음과 연분홍 저녁노을이 지는 오후 6시 길가의 정취와 햇볕의 따스함을 넋 놓고 느끼고 있었다. 내가 힘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행복이자, 수없지 놓쳤지만 수없이 잡을 오늘의 선물이었다.


꿀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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