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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Nov 21. 2021

고수는 말이 없다

사랑한다 내 친구야


1년 6개월째 단전호흡을 다니시는 엄마의 묵직한 한마디. "고수는 말이 없더라."


엄마가 다니시는 국선도 단전호흡장에는 검은띠의 고수가 유독 많다. 엄마가 보시기에 고수들은 함부로 과시하지 않는 단다. 그냥 행동으로 보여줄 뿐.


유태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승자는 책임지는 태도로 살며
패자는 약속을 남발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친구는 평소 말이 없는 편이었다. 늘 말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고, 순수했으며, 따뜻했고, 생각이 깊었다. 주위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었고,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그 친구와 카페를 가기로 한지 10개월이 흘렀다. 코시국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가자던 친구.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서로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백신을 접종한 후에 안전하게 만나자고 미뤄온 약속이 다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줄은...


뇌종양 치료를 받으며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았을 친구에게 고수가 되지 못했던 나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이 비통할뿐이다.


엊그제 동창생들과 같이 친구가 먹고 싶어 했던 것을 먹게 해주고 싶어서 친구 집으로 갔다. 나는 여럿 메뉴를 읊었고 친구는 즉석떡볶이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떡볶이와 어묵 등을 작게 조각내어 돌아가면서 친구에게 한입 한입 넣어주었다. 말없이 고개로만-더 먹겠다, 아니다-의사를 표현했던 친구는 새 모이만큼 먹다 잠이 들었다. 친구가 깰 때까지 기다리면서 동창들끼리 추억 얘기와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자면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이 또 다른 추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잠에서 깬 친구에게 '사랑해'라 말했다. 또 보자. 또 올게. 제차 인사를 건네는 우리에게 친구는 말없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 친구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면회가 안돼서 곁에 가족도 없이 나홀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친구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간절한 기도. 그리고 이렇게 친구와의 추억을 글로 남기는 일이다. 언제든지 이 글을 보며 친구를 추억할 수 있도록.


비보에 슬퍼하던 중 한 친구와 약속을 했다. 우리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슬픔에 빠지지 말자고.


이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말보다 행동을 중히 여기며 살아가자고. 말이 없던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랑한다.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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