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반려인형 캐릭터로 이모티콘 만들기
#1. 버킷리스트.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 나의 30년 된 반려인형으로 이모티콘을 만드는 거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니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려보자 마음먹었다.
첫 도전이라 첫 사수로 김나무 작가님 책을 스카우트했다. 서점에서 만난 여러 작가님들 중에 마음이 갔다. 기기와 소프트웨어는 집에 있는 갤럭시탭 4와 클립 스튜디오 앱을 선택했다. 클립 스튜디오는 초보자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첫 사용자라면 일정 기간 동안 체험판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이모티콘 종류는 움직이는 이모티콘과 움직이지 않는 이모티콘 중 후자로 선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한다.
만드는 방법은 총 32개를 제작 사양(폭 360px, 높이 360px, 해상도 72 dpi)에 맞게 그리면 됐다. 하나씩 공부하며 그리다 보니 이모티콘 하나를 그리는데만 하루 넘게 걸렸다. 참고로 이모티콘 작가님들은 단 2시간 만에 32개를 완성하기도 한다. 32개를 완성하고 나니 11월 25일이 되어 있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스튜디오에 제안을 하고 13일 후. 이메일이 왔다. 심사 결과는 미승인...
나의 사수님, 김나무 작가님의 책에 따르면 카카오톡이 이모티콘 플랫폼 중에서 가장 승인율이 낮다고 한다.(내가 미승인을 받은 것과 김나무 작가님의 책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 그는 6년 동안 승인받은 이모티콘이 50개라지만, 같은 기간 동안 미승인된 이모티콘은 무려 130개라 고백을 하였다. 승인의 이면에는 승인된 개수의 약 3배에 달하는 미승인이 있었던 것이다. 미승인을 받은 후 다시 꼼꼼하게 읽어 본 사수님의 말에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2.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다니던 회사를 관둔 후,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백수의 혼이 극에 달했으니. 여러모로 망한 삶을 나의 반려 인형 캐릭터-엉뚱복실로 만회하고 싶었다. 꿈이 맞았다. 심사 결과를 받은 날 꿨던 꿈. 이메일 화면에 미승인이라는 글씨가 보이던 꿈이었다. 꿈에서조차 내 앞에 남은 날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꿈이 현실이 된 듯. 현실에서도 까마득해졌다. 부모님 앞에서는 좌절과 슬픔을 감춰야 했다. 38살이 돼서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없이 30년 된 인형을 주제로 대화를 일삼는 딸. 부모님의 무너져버린 억장을 세워드리고 싶었는데 욕심이었을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먹는 것 같았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망하면 어떤가. 합리화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마음 독하게 먹고 멀리 볼 필요가 있었다.
망하고 나면 미처 알지 못한 걸 알게 된다.
거름망에 걸러지는 것이다.
필요한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이.
망한 경험이 결국 잘 되게 해주는
촘촘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거다.
망해봐야 본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긴다.
#3. 차근차근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야지.
마침 대봉감이 집에 있다. 주눅 든 날에는 감을 먹으며 자신감을 채운다. 이왕 주눅 들 거면 감이 나는 계절에 들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내가 걱정이시다. 인형을 가지고 온종일 조물딱 거리며 조잘거리니.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순 없다. 베테랑 작가에게도 이모티콘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라니까. 미승인 경험이 승인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다. 이 도전과 실패의 경험이 비단 이모티콘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니까. 2주 후면 그만둔 회사에 다시 출근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의 엉뚱복실 이모티콘 도전기는 계속될 것이다.
망하면 어떠나.
오늘 먹는 감으로
자신감도 자존감도 뿜뿜.
다시 마음가짐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