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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왜 가기 싫어?"

"엄마가 없어서."는 아이의 SOS였다.

by 오뚝


아이가 어린이집 4세 반에 입학해서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등원 거부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등원거부 없이 나름 긴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있다 오는 자체만으로도 기특하였으나 막상 등원을 거부하기 시작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이를 등원시키는 것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힘들었다.


어린이 집 담임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요즘 들어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하고, 언제 데리러 오냐며 엄마를 자주 찾긴 하는데 엄마를 잠깐 찾다가도 다시 또 논다며 아이가 엄마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런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가기 전까지는 엄마 껌딱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심 서운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뒤늦게 엄마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에게 "어린이 집에 왜 가기 싫어?"라고 물으니 아이는 "어린이 집에 엄마가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질문을 여러 번 하였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엄마가 어린이 집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혹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해서 아이에게 물었는데 괴롭히는 친구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좋다고 대답해서 그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 집을 다니다 보면 등원을 거부하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지금이 그 시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등원 거부가 좀 길어진다 싶었는데 어느덧 해가 바뀌었고 아이는 5세가 되었다.


원래 다니던 어린이 집이라 새로운 어린이 집에 적응할 필요도 없었고, 5세 반 친구들도 4세 때 봤던 익숙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도 기존에 원에 계셨분이라 아이도 오며 가며 많이 봤을 터였다.


그래서 아이가 더 빨리 더 쉽게 적응하리라 생각했는데 등원 거부는 계속 이어졌고 강도 또한 점점 심해졌다.


만약 내일이 어린이 집에 가는 날이라고 한다면 집에서부터 미리 눈물을 보이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거나 어린이 집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나에게 매달리거나 바닥에 주저앉아서 실랑이를 벌이고 세상 서러운 표정으로 울면서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엄마, 빨리 데리러 오세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아이가 계속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가 없어서'라는 여섯 글자는 '내가 엄마를 사랑해요.'라는 뜻도 있지만 '어린이 집에는 나의 민감함을 알아주고 나의 불편을 덜어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외롭고 힘들고 불편해요.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제발 나 좀 빨리 데리러 와주세요.'라는 아이의 SOS였다.


5세 때는 등원거부에 대한 아이의 대답이 좀 더 다양해지고, 구체화되었는데 "어린이 집이 재미가 없다." "엄마가 빨리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 " 말을 안 들어서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혼이 나서 울었다." "말을 안 들어서 교실밖에 서있었다." "월, 화, 수, 목, 금 매일 혼이 난다." "선생님이 소리를 지른다" 등의 대답이 추가되어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 아이 말만 들었을 때는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면 아이가 꾸중도 듣고 혼이 날 수도 있지만 너무 자주 혼이 나는 거 같은데 선생님은 왜 나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걸까? 혹시 우리 아이가 따돌림이나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등 이런저런 걱정들로 마음이 무척이나 심란하고 이성적인 마음보다는 감정적인 마음이 앞섰으나 아이의 말만 듣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린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궁금했기에 아이와도 아이의 담임선생님과도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아이의 '어린이 집이 재미가 없다'는 말의 뜻은 개인 놀이 시간이나 책을 읽는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가 없어서 비교적 편하고 수월한데 짝과 함께해야 하는 활동이나 단체활동 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템포를 맞춰야 해서 사회성이 취약한 아스퍼거 아들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나 놀이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또 다른, 수학처럼 답이 딱 정해져 있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거기서 오는 불안함과 혼란 및 어려움이 컸던 것이다.


친구들이 아이에게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면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일방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자기의 관심사를 말하다 보니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처음에는 다가웠던 친구들도 나중에는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고 아이도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서 혼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관심사가 자동차에 한정되어있다 보니 다른 친구들처럼 어린이집 교구, 놀이, 친구 등에게는 흥미와 관심도가 많이 낮아 집중도가 떨어지고, 아이에겐 친구들과의 접점이 별로 없어서 어린이집 생활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독서 시간이나 학습 시간(한글, 수학, 영어)은 흥미를 보인 다고 하셨고 아이도 그 시간은 좋다고 하였다.


추가로 손근육과 감각 통합에 문제가 있어서 글씨 쓰기, 색칠하기, 그림 그리기, 가위로 자르기, 색종이 접기, 손으로 붙이거나 만들기, 블록 쌓기, 퍼즐 맞추기 등이 서툴고 안 되는 것들이 많았고,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들(신발 신고 벗기, 옷 입고 벗기, 지퍼 올리기, 똑딱이 단추 잠그기, 단추 끼우고 풀기, 숟가락 질 등) 또한 해내기가 쉽지 않아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일상에서 안 되는 게 많다 보니 아이는 짜증이 늘었고

잘 안된다며 울음을 보이거나 금방 포기해 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또 자폐 특성성중 하나인 집중력 부족으로 선생님의 지시에 집중을 하지 못하다 보니 말을 안 듣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 여러 번 말해야 말을 듣는 아이로 지적과 꾸중을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담할 때 선생님께서 아이가 지시수행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집중력 부족과 함께 처리 속도 또한 느려서 대답이나 행동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고, 자신의 관심사 밖의 행동들을 해야 할 때는 행동이 많이 굼떠지거나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가 집에서는 웃음도 많고 장난기도 많고 굉장히 활동적이고 활발한 모습이어서 몰랐는데 어린이 집에서는 웃음기가 없고 말을 안 듣고 행동이 매우 느린 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폐 아동들은 뇌에 문제가 있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거고 못하는 것인데 이를 모르면 게으름을 피우는 아이,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는 아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에 선생님도 아이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자꾸 혼이 나면 너도 속상하잖아.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면 혼나지 않을 텐데... 선생님 말을 듣기가 싫은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는 말을 잘 듣고 싶은데 말을 잘 듣는 게 어려워요..."라는 아이의 말에서 선생님을 화가 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음을...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나는 혹시나 우리 아이가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는지 물었는데 그런 부분은 없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이 부분 때문에 선생님께서도 나에게 빨리 알리시지 않은 것도 있는 거 같다.


선생님이 소리를 지른다는 말은 선생님도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사람이기에 목소리가 좀 커질 수가 있는데 우리 아이는 감각 과민 문제가 있다 보니 목소리가 실제 크기보다 훨씬 더 확대돼서 들릴 수 있고, 화가 난 목소리가 굉장히 위협적이고 공격적으로 들려서 소리를 지른다고 표현을 한 것이다.


한 예로 아이 아빠가 아이에게 혼을 낼 때 목소리를 좀 크게 낸 적이 있는데 아빠 목소리 때문에 고막이 찢어져서 자기는 119차에 실려가야 하고 아빠는 112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표현을 하거나 (평소에는 전혀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보이지 않음) 아이도 아빠를 따라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감정이 굉장히 고조되고 흥분된 거처럼 보여서 우리 아이의 경우 사람의 화가 나서 커진 목소리를 공포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 아이는 야외 수업을 나가면 짝꿍의 손을 잘 잡고 있지 않고 발걸음도 맞추지 않아서 친구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또 현장 학습을 나갔을 때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아서 선생님께서 아이의 손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 바뀌어 다른 교실로 이동을 해야 할 때

아이는 기존에 하던 것을 계속하려고 고집을 피우거나 전환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이 또한 자폐 특성 중 하나이다.


친구들은 간식이나 점심을 먹기 전에 손을 씻으러 가기 위해 한 줄 기차로 줄을 서는데 우리 아이는 줄을 서지 않고 자기 하던 것을 계속 이어서 하거나 다 같이 정리하는 시간에 정리를 하지 않고 놀이를 계속한다던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과 민감도가 떨어지며, 사회적 이해와, 공동 규칙 준수에 어려움을 보이고, 단체 활동 시간에 개인플레이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었다. 집에서는 관찰되기 어렵고 한계가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선생님께서도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많이 힘드셨을 텐데 선생님 선에서 해결해 보시고자 애를 쓰셔서 나에게는 우리 아이에 대한 말을

아끼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부분과 단체 활동이 안 되는 부분을 걱정하자 선생님께서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하고 단체 활동에서 열외 되지 않도록 더욱 애를 써보겠다고 하셔서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했다.


그 부분은 내가 집에서는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것이 큰 스트레스가 되어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해서 자꾸만 자기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킨다고 생각했고, "선생님은 날 미워해. 선생님은 0점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중간이 없다. 100점과 0점으로 나누길 좋아한다. 그리고 처음 점수가 정해지면 웬만해서는 끝까지 안 바뀐다. 또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인지에 왜곡이 생길 수 있는데 이도 자폐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 하나이다.


이걸 몰라서 처음엔 아이 말만 듣고 선생님을 오해하기도 했지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보니 선생님께서 바쁘신 틈에도 많은 노력과 애를 쓰고 계심이 느껴져서 선생님을 믿고 상담을 자주 하면서 가정에서도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었고 아이의 변화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지고 좋아져야 하는데 잠깐 좋아지는 거 같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더 안 좋아지고 있는 거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기운이 쭉 빠지고 한숨만 푹푹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없어 답답했다.


'우리 아이가 담임선생님과 안 맞는 걸까? 이 어린이집과 우리 아이가 안 맞는 걸까? 일반적인 교육법과 학습법은 맞지 않는 걸까? 그럼 우리 아이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이곳 말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선생님께서 애를 많이 쓰셨지만 그에 비해 아이의 변화가 저조하자 선생님께서도 많이 지치셨는지 어느 날 내게

"더 이상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길을 잃은 새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아이는 등원을 계속 거부하고 선생님께서는 모르겠다고 하시니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 말을 듣고 이 문제는 담임 선생님의 영역 밖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의 상담은 선생님께 부담감만 드리는 거 같아 2학기 학부모 상담 신청서가 가정으로 배부되었을 때 나는 상담이 필요 없음에 체크하고 이유에 평소 상담으로 충분하다고 적어서 제출했다.


그런데 상담기간에 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거 같고 어린이 집에서 교구와 놀이와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다 보니 혼자 서서 어린이집을 방황하며 돌아다니거나 혼잣말을 하기도 해요.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그동안 저도 원장님도 최대 5세까지는 지켜보자는 주의인데 아이가 변화되는 부분이 별로 없고 내년에는 6세라 5세 때보다 배워야 할 것들도 늘어나고 또래 관계도 점점 복잡해질 텐데 아이가 이대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가게 되면 많이 힘들어질 거 같아 걱정이 돼서요. 치료를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드디어 선생님 입에서 치료 얘기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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