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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아들의 어린이집 체육대회-난감함의 연속

장애물 위에 엎드려있는 나무늘보 아들

by 오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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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집 가족체육 대회 날 신랑과 나는 돗자리와 아이 친구들에게 나눠줄 간식까지 넉넉하게 챙겨 들고 어린이집 인근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 날 아이는 체육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체육관에서 나가고 싶어 했고 집에 언제 가냐며 자꾸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체육대회가 끝날 때까지 아이를 체육관 밖에 데리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이의 첫 체육대회이기도 하고, 신랑도 시간을 내서 함께 온 터라 여기까지 와서 우리 가족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마음이 허락지가 않았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사람이 많고 낯설고 밀폐된 공간을 거부하거나 답답해했다. 그래서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가면 밖으로 자꾸 나가자고 해서 장을 보지 못하고 돌아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신랑이 나를 대신해서 장을 봐준 적이 많았고, 외식을 하기 위해 식당 안에 들어가면 역시나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외식 한번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또 밖에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했고, 가끔씩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나 여행을 가게 되면 잠은 우리 집에 가서 자야 한다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를 재우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 아이는 자폐 특성 중 하나인 '감각문제'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다.


한 예로 자폐 아동들의 뇌는 감각을 걸러내고 통합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일반 사람들과 달라서 보통 크기로 들리는 소리도 아주 크고 시끄럽게 확대돼서 들리거나 모든 소리들이 한꺼번에 겹쳐서 들리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일 수가 있다.


그날 실내 체육관 스피커에서 나오던 큰 음악 소리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목소리, 응원 소리, 함성 소리, 호루라기 소리, 발소리,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수많은 사람들, 체육관 안에서 나는 여러 가지 냄새 등이 한데 뒤엉켜서 아이는 괴로웠던 것이다.


자폐 아동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자극이 들어오게 되면 뇌에서 그것을 동시에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보이기 때문에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고, 예상치 못한 소리나 상황에 대해 불안함을 많이 느껴서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지난번 학부모참여 수업 때보니 우리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같아 마음이 쓰여서 친구들과 좀 더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친구들에게 나눠줄 간식까지 넉넉하게 챙겨 들고 가서 아이에게 친구들한테 간식을 나눠주라고 시켜보았다.


친구들은 간식을 받으면서 "고마워"라고 인사를 하였는데 그중에 한 친구가 아이가 준 간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먹기 싫다는 의미로 말없이 고개를 젓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면 보통의 아이들은 과자를 주는 행동을 멈추거나 그 친구는 건너뛰고 다음 친구에게 주면 되는데 우리 아이는 그 친구 앞에 계속 서서 그 친구가 자기가 주는 과자를 받을 때까지 계속 내밀었다.


그렇다. 자폐아동 특성상 눈 맞춤이 잘 안 되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을 읽지 못해 타인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어렵고 언어적 의사소통도 어렵지만 비언어적 의사소통에는 더더욱 취약하다. 자기가 상황을 통제하는 것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논리대로 말하고 행동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도 나의 논리나 생각에 따르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이는 집에서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나에게 계속 먹으라고 말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지금은 배가 불러서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엄마, 아~ 하세요. 맛이 없어도 드셔야죠. 먹고 싶지 않아도 드셔야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고요."라는 논리를 가지고 와서 음식을 자꾸만 내 입에 넣어주려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면서 "엄마 이제 저한테 고마워라고 말하세요."를 시킨다. 아이는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을 해주면 좋아서 방방 뛴다.


아이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부분이 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옆에서 "친구는 이 과자를 안 좋아한대. 다른 과자를 좋아한대."라고 말해주자 그 간식이 싫다는 그 친구 앞에 굳이 간식을 툭 떨어뜨리고 다음 친구에게 과자를 놔눠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아스퍼거인 우리 아이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특별 교육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집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일러주고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과자를 나눠줄 때 아이 가까이에 모여있는 친구들 각자에게 과자를 나눠주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는 누군 주고 누군 안 주고 들쭉날쭉 식으로 건너뛰기식 나눠주기를 해서 과자를 받지 못한 친구들은 당황해서 내 얼굴과 자기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그로 인한 미안함과 민망함은 나의 몫이었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가져온 간식이 아닌데.... 참으로 난감했다.'


우리 아이가 지시수행이 잘 안 되고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지난번 어린이집 참여수업을 통해 알았기에 체육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 보니 지시수행이 잘되고 운동 신경이 좋은 같은 반 친구들은 같은 팀의 다음 주자에게 릴레이 달리기 바톤을 전달하며 체육관 바닥에 그려져 있는 선을 이탈하지 않고 잘 따라서 달리기가 가능한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 나이 때에 저런 것도 가능하구나.'를 아이 친구들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단거리 달리기 개인전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아이는 처음에는 자기 선대로 달렸으나 중간 지점부터 선을 이탈해서 친구의 선과 자기의 선을 번갈아 가면서 달렸으나 그래도 끝까지 뛴 게 기특했다.


아스퍼거 아들을 둔 엄마는 작은 거 하나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작은 거 하나에도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장애물 달리기 개인전 시간에도 이기고 지고와 상관없이 아이가 끝까지만 달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장애물 달리기 개인전 시간이 시작되었다.


3~4세 아이들은 장애물 달리기를 하기에는 아직 좀 어리다고 봐서 중간에 부모님이 살짝살짝 도와주어도 되는 대형 에어 풍선을 이용한 장애물 달리기였는데 5세 이상의 아이들은 승부욕을 가지고 장애물을 빨리 통과해서 상대팀보다 먼저 결승점에 들어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몸을 날려 장애물을 과감하게 통과하거나 상대팀보다 늦게 도착하면 진 마음에 속상해서 우는 아이도 있었다.


3~4세 아이들은 장애물을 속도감 있게 빨리빨리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골인 지점까지 끝까지 달리는 모습은 보였는데 우리 아이는 달리다가 도중에 장애물이 나오자 장애물을 넘다가 그냥 그 위에 나무늘보가 엎드린 자세로 잠깐 쉬고 있는 장면을 연출해서 난감해진 나는 얼른 뛰어들어가서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장애물을 통과하여 달리기를 마쳤다.


그렇게 어린이집 참여 수업에 이어 난감함의 연속이었던 체육대회를 통해 아이의 '다름'을 추가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화(아스퍼거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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