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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 아동의 '눈 맞춤'을 강요가 아닌 유도하는 법

"있잖아.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엄마 눈을 보는 것도 힘드니?"

by 오뚝
출처 픽서베이



아스퍼거인 아들은 영아기 때부터 호명 반응과 눈 맞춤이 잘 되지 않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새카만 눈동자와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맑고 빛이 나는 눈빛을 가진 우리 아들.


'그 어여쁜 눈으로 내 눈을 쳐다보면서 말을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나의 눈은 항상 아들을 향해있는데 아들의 눈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보며 어떤 날은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고, 어떤 날은 너무나도 시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1~2초 정도의 짧은 눈 맞춤은 가능했고, 4세까지는 타인이나 처음 본 사람들과는 눈 맞춤이 많이 어렵거나 거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그래도 엄마인 나와는 그런대로 눈 맞춤이 잘 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5세 무렵에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ㅇㅇ아,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거나 들을 때 눈이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힘드니?"

"네"

"많이 힘들어?"

"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혹시 엄마 눈을 쳐다보는 것도 힘드니?"


나의 마지막 질문에 아이가 대답하기까지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아이의 대답이 진심으로 궁금하면서도 아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다만,

내가 원하고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아들은 엄마인 나와 눈을 맞추는 것도 힘들고 불편하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의 이성은 마비가 된 거 같았다.


마치 내 존재가 아이로부터 거부당한 느낌이랄까.


'아직은 엄마와 눈 맞춤을 하는 것도 제게는 힘들어요.'를 마치 '엄마는 제게 힘들고, 불편한 사람 중의 한 명이예요.'라고 들리는 거 같았다.


신생아 때부터 아이와의 애착에 무진장 신경을 썼던 나였다. 아이도 나를 가장 많이 찾았고, 의지했기에 '다른 사람은 다 그럴 수 있어도 엄마인 나만큼은 눈 맞춤을 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힘들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나만의 논리로 아이의 대답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아이 앞에서 서운함을 드러내거나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있잖아. 아들은 아들 눈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엄마는 아들이 엄마 눈을 쳐다볼 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심장이 막 쿵쿵 뛰고, 행복하고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거 같다?"라고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눈물을 삼켰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그때를 다시 떠올리니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도대체 이 눈물을 그 순간에는 어찌 참았는지 아이러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의 솔직한 대답이 나를 엄마로서 또 한 번 겸손하게 만들어준 거 같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우주'이고, '세상'이라던데 그 말이, 그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날 느꼈다.


자폐 아동 중에는 '아무리 엄마라고 할지라도' 눈 맞춤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엄마와의 눈 맞춤도 힘든데 타인들이나 처음 본 사람들과의 눈 맞춤은 아이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히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아이에게 '눈 맞춤'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라서 다음과 같은 실수들을 했었다.


"말을 할 때는 눈을 보면서 말해야지."


"말을 들을 때는 눈을 보면서 들어야지."


"인사를 할 때는 눈을 보면서 해야지."


"어딜 보니!, 눈을 똑바로 봐야지!"


이런 말들을 아이에게 자주 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고, 아이의 눈은 허공이나 다른 곳을 향해있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나, 구워 놓은 생선, 길에 지나다니는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눈은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것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이내 그에 대한 해답이 떠올랐다.


그 대상들은 눈 맞춤이 힘든 아이에게 눈을 보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거나 눈 맞춤에 대해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로 아이에게 더 이상 눈 맞춤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이가 가장 편한 상태(예 : 침대에 누워있는)에서 나와 눈을 맞출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눈 맞춤 피하기 놀이'였다.


아들이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적용한 놀이이기도 했는데,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아이가 내 눈을 쳐다보면 나는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 재빨리 눈을 피하거나 손으로 내 눈을 가렸는데 아이는 그런 나의 반응을 재미있어하면서 내 눈을 가린 내 손가락을 자신의 손으로 벌리면서까지 내 눈을 또렷이 응시하거나 똑바로 눈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자연스러운 눈 맞춤은 아니었지만 아이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비치는 그 순간을 오랫동안 만끽하고 싶은 욕심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누르며, 지금은 나의 욕구보다 아이가 '눈 맞춤 놀이'를 재미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놀이 자체에 집중하고자 애썼다.

그렇게 눈 맞춤 피하기 놀이는 아이에게 눈 맞춤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었고, 눈 맞춤이 재밌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자 나중에는 놀이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아이와 눈 맞춤이 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고, 눈 맞춤이 자연스러워졌으며, 눈 맞춤이 유지되는 시간 또한 늘어났다.


이와 더불어 아이가 내 눈을 잠깐이라도 쳐다보면서 말을 하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너무나 기쁘고, 감동한 표정으로 엄마 눈을 보고 얘기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스킨십을 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침대에 누워서 아들에게 사람의 '눈'과 '눈 맞춤'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겪은 일처럼 들려주었다.

(사례는 성인 아스퍼거나 성인 고기능 자폐인들이 쓴 자서전의 눈 맞춤 부분을 참고하거나 자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성인 아스퍼거 당사자에게 눈 맞춤에 관한 질문을 하고 얻은 답을 참고로 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왜 봐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 얘기처럼 혹은 엄마인 내가 어렸을 적에 직접 겪은 이야기처럼 들려주었다.


"이거 진짜 비밀인데, 아들을 너무 사랑하니까 특별히 얘기해 주는 거야. 어른 들중에서도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이렇게 운을 띄우면 아들은 대단한 비밀을 하나 알게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말은 입으로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이나 표정으로도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어. 그런데 입처럼 목소리를 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눈은 눈빛으로 표정은 눈썹, 눈, 코, 입, 얼굴의 주름 등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는 않아. 엄마가 눈으로 말하는 것을 보여줄게. 기쁘다, 기분 좋다는 말을 눈으로 말해 볼게. 잘 봐. 이번에는 슬프다, 속상하다는 말을 눈빛으로 보여 줄 게. 마지막은 화가 많이 났다 말을 눈빛으로 지어볼 게. 지금은 눈의 비밀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 괜찮아. 엄마도 어렸을 때는 그랬거든. 그런데 계속 상대방의 눈을 보다 보니까 지금은 비밀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어."


"있잖아. 엄마가 어렸을 때 친구 눈을 왜 쳐다봐야 하는지를 잘 몰라서 눈을 안 쳐다보고 말을 하고, 말을 들었더니 친구가 엄마를 오해하더라? 엄마는 친구가 하는 말을 귀로는 다 듣고 있었거든? 그런데 친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더라? 엄마 친구 중에 이름이 000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엄마가 친구 눈을 안 쳐다보면서 얘기를 하고, 들으니까 어느 날 친구가 '너 내 얘기 듣고 있어? 안 듣고 있지?'라면서 막 화를 내는 거야.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 네가 말하는 거 안 들어줄 거야!'이러면서 엉엉 울면서 가버리더라고.


그때 친구도 많이 속상해했지만, 엄마도 정말 속상하고, 억울하고, 기분이 안 좋았어.


그래서 생각했지. 친구 눈을 계속 쳐다보는 건 불편하고, 힘드니까 눈과 눈 사이나 코나 이마를 쳐다보면서 말을 하거나 얘기를 들었더니 더 이상 친구가 오해를 안 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때부터 사람들과 얘기할 때 상대방을 쳐다보면서 대화를 해."


위와 같은 식으로 '눈 피하기 놀이'와 '눈 맞춤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 아들에게는 통했는지 눈 맞춤의 질과 양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좋아졌다.


최근에는 가족과 친척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처음 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눈 맞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고, 본인 얘기를 타인한테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하는 횟수와 경우가 많아졌다.(아직까지 상대방의 얘기를 들을 때는 눈을 맞추면서 듣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이 부분도 차차 좋아지리라 믿는다.

그래도 아이가 말을 할 때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건성으로 듣거나 대답하면 자기 얘기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딱 잡고 자기 눈과 내 눈을 맞추는 행동을 한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있잖아.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아직도 엄마 눈을 보는 게 불편하니?"


"안 불편해요."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엄마 마음을 헤아려 엄마가 좋아하는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눈 맞춤은 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자폐라는 장애가 있어서 눈 맞춤이 어려운 아이에게 어떤 방법이 먹힐지 골똘히 고민하고, 이를 적용해 보는 일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고, 감사하게도 효과 또한 있었다.


따라서 현재 아이의 눈 맞춤 상태에 크게 절망하고, 낙담하고 있는 부모님이나 친지분께서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희망'을 가지고, '나의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아이의 눈동자에 담긴 나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날이 늘어나고,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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