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120
쓸데없이 창조적인 시간을 갖자.
오늘은 우리집 도배를 하는 날이었다. 8시도 되기 전부터 작업이 시작되었기에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다. 컵 누룽지를 데워먹으며 금요일에 있을 북콘서트 현수막을 디자인했다. 며칠 전 서로 즐거워하며 현수막 아이디어를 나눠서인지 만들면서도 흥이 났다. 오랜만에 '쓸데없는 창조력'이 생겼다. 예전에 지인들과 낄낄거리며 만들었던 '전국 루저대회'나 '도시남녀 명절 프로젝트' 생각이 났다. 상상력에 상상력이 더해지고, 그로 인해 서로 즐거운 것... 나는 그런 일을 좋아한다. 만든 시안을 몇몇 지인에게 보여주니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몇 가지 행정 업무를 하고 매거진에 올릴 원고를 검토했다. 하나는 필자와의 의견 교환이 끝나 최종 편집하고 발행만 하면 되고 하나는 1차 편집을 거쳐 필자와 의견 교환을 해야 하는 글이었다. 두 편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편집자'라는 명함을 감히 걸지는 못 하지만 나는 편집자의 눈으로 텍스트를 읽는 게 좋다. 나라면 이 문장을 어떻게 쓸까, 독자는 이 문장을 어떻게 소화할까 연결해서 보다 보면 이해가 더 잘된다.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잘 하고 싶은 분야가 편집과 편집 디자인인데 오늘은 그 두 가지를 하며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왜 일을 합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늘 망설임없이 "재미있어서요!" 라고 대답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대답할 수 없는 이유들이 많아졌다. 왜 그런가, 생각했더니... 쓸데없이 엉뚱한 생각, 되게 잉여력 쩌는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가 사라져가기 때문이었다. 함께 낄낄거리며 바보스러워도 좋을 동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숨구멍같은 시간과 기회들 말이다.
며칠 전 보았던 <족구왕>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족구장을 다시 마련해달라는 복학생 만섭의 요구를 이사장에게 전달하는 교직원의 대사다. "이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학생들이 족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정확한 워딩 기억 안남)." 나는 이 대사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게다가 "근데 우리 이거 우승해서 뭐하냐"는 질문에 대답도 못 하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올해는 덜 열심히, 덜 진지하게 살고 싶다 생각했는데 나의 필요를 배반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더 쓸데없어져야겠다. 더 사랑스러워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