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121
문장 연습을 하자.
오늘은 우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매거진에 두 편의 글을 올리느라 분주했다. 글을 크게 손 보지는 않으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문장이 잘 읽히는지 생각하며 읽다보면 시간이 홀랑간다. 다양한 필자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된 점은 역사 연구자들의 문장이 좋다는 점이다. 보통 국문학이나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의 문장이 좋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아니다. 매거진 고정 필자인 깡성호 님이나 오늘 <대한민국은 왜?> 서평을 기고하신 홍문기 님의 경우 낭비없이 간결하게 문장을 구성한다. 게다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빙빙 돌리지 않고 자료에 근거하여 명확하게 서술한다. 오늘은 곰곰이 이들의 문장은 왜이리 잘 읽힐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단어때문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문장을 구성해야 하므로 그들의 단어는 객관적이고 명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자리를 찾은 단어들이 모여 읽기 좋은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리라.
나처럼 문학적 관습이 스민 경우 단어와 문장 사이에서 머뭇거리거나 감정적으로 개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겉멋이 잔뜩 들어간 느끼한 문장이 되곤 한다. 된장국에 버터와 치즈를 잔뜩 넣은 꼴이다.
이건 비밀인데 가장 난감한 글을 쓰는 경우는 대개 목회자거나 신학자다. 이들의 문장은 주술 관계가 뒤틀린 번역투거나 끊어야 할 곳에서 끊지 못하여 장황하다. 된장국에 부대찌개 재료도 넣고, 김치찌개 재료도 넣고, 청국장도 넣고, 밥도 욱여넣는 꼴이다. 언젠가 어떤 신학 아티클을 읽는데 너무 이해가 안 되어 혼자 괴로워 하다가 기독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보여주며 이게 이해가 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신학 책 중에 이런 책 많아서 저는 익숙해요." 아마 기독교 서적이 번역서 일변도거나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이 수동태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다 그렇지 않다.
아무튼, 오늘 편집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배웠다. 좋은 글이란 어려운 개념의 나열이나 화려한 수식의 향연이 아니라 단어가 정확하게 배열되어 잘 읽히는 글이구나. 그러므로 더 열심히 단어 공부하고 문장을 벼리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