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신비의 자리에 함께 하자

하자일일결심‬ 20160131

by 명랑달빛

고통과 신비의 자리에 함께 하자.

'적어도 1-2월에는 가나안 성도가 되자'는 결심을 보류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에서 자라 20년 넘게 성가대 지휘를 해오신 OOO 권사님이 갑작스레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OO교회에 출석한지 5년째 접어들지만 등록은 하지 않은 나그네이기도 하고, 권사님과는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지만 내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격려해준 공동체가 당한 고통에 참여해 함께 기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교회는 검고 깊은 고요에 잠겨있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맨 앞자리를 보았다. 권사님이 늘 앉아계시던 자리였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아들을 잃고 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에 나오는 표현처럼 "언제나 한 사람이 모자란" 경험을 우리는, 앞으로 그 자리를 통해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자리에 앉아 예배를 기다리는데 사회를 맡으신 목사님이 말문을 여셨다. "비통한 그대로, 황망한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랬다. 섣불리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에 우리는 너무 서툴기도 하고 뭘 모른다. 그저 그 상태로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예배 내내 틈틈이 OO교회를 위한 주님의 긍휼과 위로를 구했다. 나는 나대로, 함께 눈물 흘리며 아파하던 성도들은 성도대로, 예배를 맡은 이들은 그들대로, 지휘자를 잃은 성가대는 그들대로 최선을 다해 애도의 마음을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교회 식당에서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밥도 많이 먹고... 그 힘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설교를 전하신 목사님이 인용하신 레이먼드 카버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 나오는 빵집 주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할 자리를 남겨두자. 공동체는 고통을 함께 통과하며 긍휼과 위로의 신비를 경험하도록 서로 돕는 존재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는 고통과 신비의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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