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결심도 하지 않은 날

일일결심‬ 20160210

by 명랑달빛

내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1시-1시 반 정도인데 연휴 기간에는 무려 12시 전에 잠이 들었다. 챙겨보는 드라마 외 다른 TV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자투리 시간에는 <요츠바랑!>과 <보건교사 안은영>을 번갈아 읽었다. 잠을 일찍 자니 새벽 네다섯 시에는 꼭 눈이 떠졌다. 그럴 땐 눈뜨기 바로 전에 꿨던 꿈이 생각나는데 주로 꾸는 꿈은 정해져 있다. 어느 모임에서 토론을 하거나, 블록버스터급 모험을 하느라 계속 어딘가를 가거나, 발을 겨우 디딜 수 있는 공간만 있는 높은 절벽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꿈을 번갈아 꾼다. 며칠 동안 절벽에서 깼다. 왜 그렇게 고단한 꿈만 꿀까. 새벽에 깬 탓에 잠이 들었다, 깼다 반복하다 보니 집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연휴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볕이 좋은 듯 하니 외출을 할까, 고민하다가 딱히 누군가를 불러내기도 마땅치 않고, 텅 빈 집에서 고요하게 뒹굴거리는 것도 좋겠다 싶어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란, 책을 읽다 스르륵 잠이 드는 것. 어쩐지 <요츠바랑!>에 나오는 풍경 같기도 하다. <요츠바랑!>은 참 좋은 작품이다. 꼬마 요츠바에게는 날마다 신나는 일들만 있으며 그런 요츠바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공동체가 있다. 이 책 제목이 왜 <요츠바>가 아니고 <요츠바랑!>인지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오늘은 <보건교사 안은영>과 <요츠바랑!>이 어쩐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확하게 서술하기 애매해서 생각을 멈췄다.


우리 엄마는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을 '시간이 번쩍번쩍 간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오늘 같은 날이 딱 그런 날이다. 책을 읽다 잠이 들고, 하현우가 나온 <복면가왕>을 보면서 '민물장어'와 '라젠카 세이브 어스'를 듣다가 살짝 울고, 간식으로 호박 식혜를 먹다 보니 시간이 번쩍번쩍 가고 있었다.


책을 읽기도 지쳐 영화를 보기로 하고 검색을 했다.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을 볼까 고민하다가 달달한 영화를 보고 싶어 영국 영화인 <런던 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을 다운받았다. 국내에는 개봉하지 않고 바로 다운로드 서비스 시장으로 넘어간 작품이었다. 영화는 그저 그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같은 영화는 아닐까 기대했는데 뻔하게 흘러가고 별 감동 없이 끝났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쩐지 허무하여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이거라도 해놔야 장사를 마치고 밤에 귀가할 부모님께 덜 미안할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날이 쌀쌀해지니 몸이 아파왔다. 사실,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돌았는데 효도 시내 투어를 다니다 보니 방치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몸도 안 좋으니 나의 소울 푸드, 누룽지를 끓이고 아껴두었던 스팸 몇 장을 구워 볶음김치와 먹었다. 아까는 목이 칼칼하더니 저녁을 먹는 사이 두통이 생기고 몸이 추워졌다. 잠시 켜두었던 TV 소리가 너무 커서 꺼버렸다. 뉴스를 보자니 속이 상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자니 너무 시끄럽고 유치했다. 역시 드라마가 최고다.

뽀드득 설거지를 하고 나니 이번 연휴에 하려고 했던 일 중 실행하지 못 한 일이 생각났다. 지금이라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온수매트 켜놓은 침대가 나를 불러 누웠다. 머리는 점점 아프고 내일은 출근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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