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무를 많이 사귀자

일일결심 20160218

by 명랑달빛

글동무를 많이 사귀자.


2014년부터 외부 기고를 했으니 2년 정도 페이스북 담벼락을 벗어나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의 숨결로 날아갈 가벼운 이력이겠지만 나는 단 한 편도 가볍게 쓰지 못했다. 글 쓰기에 관해 내가 본 첫 책 나탈리 골드버그의 첫 책 제목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제목처럼, 나를 긁어모아야 겨우 한 편을 내놓을 수 있었다. 유난스럽다 하겠지만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확한 단어를 박고 있는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잘 읽히게 쓰고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문제부터 그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의 결과 학습에 대한 성의의 영역까지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어갈 때가 없었다. 그래서 남들은 홀랑 홀랑 쓰는 A4 2장 미만의 글도 책 한 권 쓰는 사람처럼 엄살을 떨며 쓰곤 했다. 다행히 그런 나의 모자람을 좋게 봐주는 온/오프라인 동무들이 있어서 '근근이'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어떤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에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자료를 찾아본다. 주로 쓰고자 하는 주제를 먼저 쓴 칼럼이나 책들을 찾아보는데 그 과정에서 1차 좌절을 맛보고, 생각에서 손을 통해 밖으로 빼내는 과정에서 2차 자기모멸에 빠진다. 내 언어가 이렇게 가난했던가... 내가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았던가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다. 그것과 무관하게 따박 따박 다가오는 마감일에 3차 불안을 느끼고 그 삼단 콤보를 통과해야만 글을 보낼 수 있다.


글을 쓸 때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이 필요하다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1도 없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 다른 글로 덮어버리려고 쓸 뿐이다. 좌우지간, 이렇게 힘들면 안 쓰면 그만인 것을 나는 그러질 못 한다. 자기 학대인지는 모르갰지만 안 쓰면 정말 못 쓰게 될까 봐 그게 싫어 쓴다. 이걸로 뭘 어찌하려는 계획 따윈 없이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게 고마워서 계속 쓴다.


이렇게 징징대지만 사실 그동안 기고한 글들이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난리를 치며 쓴 글이 '못 봐줄 정도'라면 나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인간이다. 아무튼,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방어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정말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정말 막막했는데 '글은 마감이 쓴다'고 어찌어찌하여 초고를 완성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이상했다. 주간 경향 칼럼의 경우 필진 그룹에 미리 올려 의견을 받는데 초고를 올리니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부분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친하게 지내는 동생에게도 글을 보여주니 비슷한 의견을 들려주었다. 결국 보완을 했는데 그것도 별로였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을 얻어 겨우 원고를 마감할 수 있었다. 이번 글은 그녀들과의 공동 작업의 결과다.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동안 글을 쓰며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아마 혼자 모든 걸 다 해결하려고 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초고를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완벽한 것만 보이려고 하다 보니 한계가 명확하게 보였던 것 같다. 부족한 것은 배우고 모자란 것은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동무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을 나누며 발전할 수 있는 관계들 말이다. 홀로 쓰기보단 함께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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