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215
그래도 내 속도를 유지하자.
저녁 일정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환승역에서 계단을 오르려는데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까 싶은 꼬맹이들이 폴짝폴짝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내 가슴 높이 정도 키의 꼬맹이들이 계단을 세 개, 네 개씩 한꺼번에 뛰어내려오는 소리에 맞춰 내 심장이 쿵쿵거렸다. 저렇게 뛰어내려오다 넘어질까 봐. 이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꼬맹이들은 사뿐하게 착지를 한 후 어디론가 다시 날아가버렸다.
삐끗하거나 넘어지는 게 일상이기에 넘어졌을 때의 아픔을 잘 안다. 많이 넘어졌다고 넘어지는 횟수에 따라 고통이 덜해지거나 낙법이나 우아한 착지법 같은 기술이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것도 아니어서 넘어질 때마다 새롭게 아프고, 지속적으로 창피하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넘어지지 않는데 쓴다.
저녁 일정을 마치고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구 중력 적응에 실패한' 나에게는 이런 날이 가장 위험한 날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넘어질까 봐 무릎이 시리다. 별 수 없이 엉금엉금 기어가듯 걷게 된다. 답답하지만 별 수 없다.
문득 내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의 시간이 옳듯 내 시간도 틀리지 않았다'며 애써 나를 긍정해 보지만 나는 분명 더디고, 서툰 내 삶의 속도에 슬슬 조바심을 내고 있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만 겨우 평균을 유지할 수 있고, 매일 뭔가 끄적이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해볼 목표 따윈 없다. 누군가 나에게 3년 후, 5년 후 계획을 묻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다만 하루하루 더디게 살 뿐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인데 그런 질문 앞에서 괜히 부끄럽다. '그 나이에...'라는 말을 싫어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끊임없이 적용하여 나를 괴롭힌다. 나보다 후배 거나 내 또래의 누군가 나보다 행복하거나 잘 나가는 것 같으면 내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어서 열등감이 사춘기 소녀 여드름처럼 돋는다. 내 또래의 타인들이 누리는 일상을 나는 왜 계속 유예시키며 사는지 이유를 몰라 억울하기도 하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매일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매일 눈길을 더듬거리며 걷는 것 같은 내 삶의 속도가 지긋지긋할 뿐이다.
어느새 쌓여 미끄럼 길이 된 눈길을 걸으며 다시 생각했다. 있잖아. 그래도 앞으로 가고 있는 거잖아. 늦어도 넘어지지 않고 걷고 있잖아.
주저앉을 순 없기에, 그래도 가야 하기에 나에게 거는 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