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결심 20160222
페미니스트가 되자.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가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결혼을 하고 육아의 세계로 진입하는 걸 간접 경험하며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세상은 여성이나 아이와 같은 약자들이 살기 참 어렵구나. 위험하구나. 유모차를 끌고 나가봐도 알 수 있다. 유모차를 끌기 전에는 세상에 '턱'이 그렇게 많고 높은지 몰랐고, '속도'가 약자를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변화가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는지도 체감하지 못했다.
굳이 그녀들을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결혼을 하면 그 이유로, 하지 않으면 그랬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평가당하고, 억압당하며 살게 된다는 걸 아주 늦게 깨달았다. 물론 그런 부당한 현실을 자각조차 못 하기에 그들만의 질서가 평화롭게 유지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김승희의 시에 나오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 속에서 안전하게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세계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폭로하고 뭔가 꿈틀거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 '물론' 환영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녀들의 오랜 노오오력에 의해 지금 우리가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자란 교회 구조에서 페미니즘이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질서를 위협하는 가치라고 여기도록 가르쳤다. 남자는 교회나 가정의 머리이며 여자는 잠잠해야 한다는 명령이 여전히 유효하고, '현숙한 여인'을 미덕으로 여기는 구조에서 자란 내 한계는 명확했다. 그러므로 나는, 페미니스트들의 '짹짹거림'이 때론 과하거나 평화를 깨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차츰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균열이 생기고, 꽤 많은 불편이 생겼다. 어떤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왜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던가 부끄러웠다. 물론 앞서서 '쎈년'이 되었던 '자매님'들에게 빚졌고, 가부장 사회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스스로 드러낸 한계들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던 부당한 현실들이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보니 설명되기도 했다. 즉,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나와 당신,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할 마땅한 언어를 찾은 것이고, 그 언어의 '주어'를 찾은 것이다.
그냥 살아도 될 것을 굳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지"라고 선언하는 것은, 여성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맞설 '마땅과 보편의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야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거창한 것 같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까칠하고 쎈년'이 되겠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 - 김승희
아침에 눈뜨면 세계가 있다
아침에 눈뜨면 당연의 세계가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있다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거기에 있다
당연의 세계는 왜,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왜,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는 것일까,
당연의 세계는 거기에 너무도 당연히 있어서
그 두꺼운 껍질을 벗겨보지도 못하고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당연의 세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의 세계는 당연히 당연한 사람이 만들었겠지,
당연히 그것을 만들만한 사람,
그것을 만들어도 당연한 사람,
그러므로, 당연의 세계는 물론 옳다,
당연은 언제나 물론 옳기 때문에
당연의 세계의 껍질을 벗기려다가는
물론의 손에 맞고 쫓겨난다
당연한 손은 보이지 않은 손이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물론의 손일까,
당연한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
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는
물론의 세계의 말은 또한 믿을 수 가 없다
물론의 세계 또한
정녕 나를 좋아하진 않겠지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소을 걸어라
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
하루 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
생사불명, 힘들여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
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
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
당연과 물론을 양손에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