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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Mar 16. 2016

신도림 그녀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잘 모르는 남자를 쫒아간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당시 나는 신도림역 대일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배우는 한 달 짜리 과정이었다. 총 세 분단으로 구성된 의자에 촘촘하게 앉아 수업을 들었다. 지금 기억해보니 내가 주로 앉던 자리는 가운데 분단 앞에서 셋째줄이었던 것 같다(그래서 내가 재주소년의 노래 '이분단 셋째줄'을 좋아했나?). 지정 좌석처럼 늘 같은 자리에 앉으니 어느 날부터 앞과 뒤, 양쪽 옆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그 아이는 늘 내 왼쪽 건너편 옆에 앉았는데 또래 남학생들의 까까머리가 아닌 당시 유행하던 장국영 스타일 머리에 옷 입는 스타일이나 행동 등이 또래 남학생들과는 다른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처음에는 스리슬쩍 옆모습을 훔쳐봤다가, 이름이 궁금해졌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책상 위에 있는 사물들을 추적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일기장에는 그 이름 세 글자로 가득한 유치찬란한(당시에는 우주만큼 비극적인) 짝사랑 스토리가 펼쳐졌다. 지금이나 그때나 '짝사랑 전문가'여서 나는 그 아이에게 말 한마디 못 전해보고 마음속으로만 안부를 전하곤 했다.

그러다 그 날이 왔다.


학원 종강하는 날. 나는 '비극적 드라마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힘없이 학원에 도착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어김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그 아이의 단정한 뒷모습을 확인하고 나의 '그 자리'로 향하려는데 맙소사! 나의 그 자리에, 그 아이와 가장 가까운 나의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할 수 없이 거의 맨 뒷자리에 허물어지듯 앉았다. 그 아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는데 속상했다(지금은 단지 '속상했다'라는 건조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당시 내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맞이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 시작하려던 순간. 그 아이가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찾는 듯 했다. 그러다 맨 뒷자리에 앉은 나랑 눈이 마주쳤다. 아니, 눈이 마주쳤다고 기억하고 싶다. 눈이 마주친 후 그 아이는 갑자기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뒷자리로 걸어와 내 건너편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무심하게 칠판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이후로 나와 나를 둘러싼 시공간은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왜, 뒤로 왔지? 나랑 눈이 마주쳤었는데… 나를 찾고 있었던 걸까?' 라는 생각만 그 무중력의 시공간을 둥둥 떠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부터 내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아이와 꼭 한마디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중력의 시간을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당황한 마음에 복도로 나와 출구로 뛰었는데 다행히, 저만치 앞 서 가는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고 단정한 뒷모습. 집에 가려는 지,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그 아이를 가만가만 따라갔다. 세상의 모든 말들이 머리에 가득 차올랐다가, 한편으로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용기 내어 잡지도 못할꺼면서 나는 왜, 저 아이를 따라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그저, 몸이 따라가고 있었다.


신도림역은 1호선과 2호선, 그리고 2-1호선이 있는데 그 아이는 2-1호선을 타는 아이였다(당시 목동 사는 아이들이 그 학원에 많이 왔으므로 목동 아이라 추정된다). 가만가만, 그 아이를 따라가는데 지하철 도착 벨이 울리자 그 아이는 갑자기 속도를 내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찰나, 그때, 나는, 걸음을 멈추어 그 아이의 뒷모습에 작별 인사를 했다. 내 한 달 짝사랑과 이별을 했다.

어린 중학생의 사랑도 사랑인지라, 짝사랑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한 조각을 아프게 내어주는 사랑인지라, 당시 그 어린 중학생에게는 <여명의 눈동자>의 채시라와 최민수의 비극적 사랑, <질투>의 최수종과 하희라의 밀당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기의 사랑’이어서 집에 돌아와 평펑 울며 일기장에 길고 긴 이별의 글을 썼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내 마음은 대일학원 강의실 맨 뒷자리 그 무중력의 공간, 신도림역 2-1호선으로 향하던 그 이별의 공간 어딘가를 방황했었다. 그리고 몇 번쯤 후회를 했었다. 그날 이후에는 친구따라 노량진 한샘학원을 다니게 되었기에 영영 그 아이를 만날 길이 없었다.

그때 나에게 용기가 있었다면 나의 첫 연애는 고등학교 시작과 함께 시작되었을까? 반대로 ‘까여서 쪽팔린’ 기억을 품게 되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때 그 아이는 왜 늘 앉던 자리에서 일어서 하필 내 옆자리로 왔었을까? 나랑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렇게 ‘모를 일’ 가득한 기억이, 나에게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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