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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Dec 28. 2019

임직원 여러분. 올해도 위기입니다.

신년사의 위기설은 왜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나



올해도 위기가 또..?


 매년 초 회사 인트라넷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공지사항은 회장 혹은 대표의 신년사다.


 신입사원 시절 그룹 회장님의 신년사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직원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 회사를 이끄는 수장이 어떤 생각으로 한해를 바라보고, 또 어떻게 회사를 이끌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신년사 말미엔 직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말 하나쯤은 담겨 있지 않을까?라는 사회 초년생의 순수함이 담긴 부푼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 3~4년 차쯤 되니 매년 비슷해 보이는 신년사는 더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구성과 내용은 비슷한 흐름으로 가면서 표현만 조금씩 바뀌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나보다.


<흔한 기업 신년사의 서사 구조>

1. 지난 한 해 노고에 대한 감사 인사
2. 위기설
3. 변화와 도전, 열정 당부



기승전'위기'


 매년 반복되는 신년사의 핵심은 '위기'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 변화와 혁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 4차 산업혁명 등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친구들은 매년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직원들은 연말에 노스트라다무스급의 예언가로 변신해 내년도 역시나 위기일 것이라며 경영진의 신년사를 미리 예측했고, 연초엔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며 조소를 보내곤 했다.


 경영진이 매년 부르짖는 위기설에도 왜 직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직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 가지 이유



1.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직원들이 위기감을 느끼려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들 계열사 중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가 당기 순이익 적자를 기록했으며, 사업 포트폴리오상 어떤 사업 부문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위기설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경영진 워크숍을 지원하는 역할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회의의 주된 안건 중 하나는 회사에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이 없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나는 오히려 그분들의 시각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은 그들이 말하는 위기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수치와 정보. 즉 회사의 속사정을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당시 직원들은 회사의 방향성과 주요한 정보들을 경영진으로부터 듣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접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경영진은 내부에 공유하는 구체적인 정보도 없이 직원들이 ‘알아서 잘’ 위기 상황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2. 매년 반복되는 위기설에 대한 피로감과 거부감

 

 동일한 패턴에 대한 피로감에 더해 위기설로 인해 피해를 본 쓰린 기억은 직원들이 위기설을 경멸하게 만드는 이유다. 회사의 위기설은 곧 다가올 연봉 협상과 성과급 지급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매년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회사 그리고 경영진 레벨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 항상 그 위기설의 책임은 직원들의 몫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위기라는 메시지가 전달된 후 직원들은 일정 수준 이하의 고정된 연봉 인상률 혹은 동결, 성과급 축소 등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위기설을 반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 직원들 귀에 경영진의 위기설은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와 같은 이야기쯤으로 들린다.


3. So what?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100번 양보해서 경영진이 말하는 위기가 진짜라고 치자. 그래서 직원들은 단지 열정을 갖고 도전하고 변화하면 되는 것인가?


 위기감을 고취했다면 우리 조직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주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발 빠르게 전 사업 부분에 전달되어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위기감을 잔뜩 고취한 신년사 이후 조직의 모습이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직구조도 개편되지 않았고, 조직장은 그대로이며, 사업목표와 방향 또한 개선하는 수준에 멈춰있다. 결국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반복되는 위기설은 직원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신년사. 극도의 솔직함을 보여주길


 기업의 내부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고, 각자가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8년 12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유니콘 반열에 오른 혁신 기업 Toss의 이승건 대표는 "최고 수준의 자율성은 최고 수준의 정보 공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일부 임원들만 알 수 있는 정보까지도 모든 팀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한다"라고 말한다.


 직원들이 회사의 내부 정보를 얻는 경로는 익명앱까지 확대될 정도로 다양화됐다. 익명앱 블라인드의 각 산업 라운지에서는 주요 회사의 연봉정보, 복지, 문화적인 측면들이 재직 중인 직원들에 의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시대다. 매년 반복되는 위기'썰'은 그만 풀고, 경영진은 좀 더 직원들에게 솔직해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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