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모레비 Mar 10. 2020

80년대생 중간관리자가 바라본 직장내 세대론



꼰대 ‘요즘 것들모두를

이해할  있어서 괴롭다.


 SSKK(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가 당연시되던 경직된 위계 구조에 압도당해 "예 알겠습니다!"만을 외치던 80년대생이 "왜 해야 되나요?"라고 당돌하게 묻는 90년대생들을 만났다.


 어느덧 중간관리자가 된 80년대생은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고, 후배들의 당돌한 질문을 받아가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고달픈 낀세대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낀세대를 둘러싼 두 세대는 요즘 회사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첫 번째 주인공은 '꼰대'다. 그들은 수직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엄격한 위계질서가 곧 일하는 방식이었던 베이비부머 혹은 X세대 상사들이며, 기존의 문화를 답습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바쁜 캐릭터로 묘사된다. 두 번째 주인공은 '요즘 것들'이다. 디지털 원주민이라고도 불리는 밀레니얼/Z세대 후배들은 기존의 관습과 조직문화에 당당히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주장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얼떨결에 중간 지대에 놓여버린 80년대생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위로는 여전히 권위적인 상사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해왔던 방식대로 후배들을 이끌면 선배 역시 라떼였냐며 '젊은 꼰대'로 낙인찍고 선을 그어버리는 후배들까지 조심스럽다. '꼰대' 상사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요즘 직장은 당나라 군대냐며 불호령이 돌아오고, '요즘 것들'에게 일방적인 지시와 강요를 하다 보면 평생직장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라며 “YOLO”를 외치고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가 버린다.


 80년대생이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을 둘러싼  세대의 감정 모두 충분히 이해할  있는 공감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권위적인 환경 아래 순응하는 삶을 살아오며 어느새 조직생활의 생리가 몸에   오래다. 동시에 그들은  막히는 규율과 법칙을 따르면서도 끊임없이 불합리함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물음표를 던지며 살아왔기에 당돌하게 질문하는 후배들의 속내를 충분히 이해한다. 단지 자신들처럼 순순히 따라주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80년대생 중간관리자들은 후배들에게 자신들이 따르던 길을 그대로 강요할 만큼 충분히 꼰대롭지 않기에 괴롭다. 결국 그들이 나름대로 직장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상사들의 총알을 육탄방어하면서도 후배들에게 불합리한 관행을 더 이상 대물림하지 않는 것이었다. 혹은 좀 더 능동적으로 후배들을 어르고 달래며, 상사들과 갈등이 없도록 중재자 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낀세대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개성 강한 '꼰대' '요즘 것들'  세대의 입장 모두를 공감할  있기에 공감할  있는 마음의 크기만큼  고달프게 살아간다.




세대론은 고통받는 낀세대를 위한

적절한 해법이   있을까?


 서점 매대를 가득 채운 세대론은 중간관리자들이 '꼰대'들의 특성을 이해해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처세술을 배워보라고 권한다. 또 '요즘 것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들의 특징을 이해해 맞춤형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주문한다. 막상 중간관리자들을 위한 리더십이라고 포장된 책들과 교육에도 온전히 우리를 주인공으로 다루는 콘텐츠가 없다.


 세대론은 마치 직장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이 단순히  아래  세대를 이해하고 갈등을 막아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내면 임무가 끝나는 것처럼 오해를 심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대론은 이미 벌어진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적절할지 몰라도 중간관리자의 본질적인 역할  나아가 그들이 조직에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10~20년 주기로 나뉘는 세대론은 혈액형별 특성이나 띠별 운세만큼이나 비과학적이다. 동일한 년도를 넘어 특정 기간에 태어난 그들의 성향이 대부분 같을 리가 없다. 일례로 1980년대생부터 1990년 초반까지의 출생자들은 같은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고 있지만 80년대생인 내 주변의 3~4년 터울 선후배들만 보아도 밀레니얼&Z세대와 같은 특징을 보이다도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라온 사회적 환경과 맥락 속에서 공통적으로 뽑아낸 몇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는 세대론은 구시대적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낯선 풍경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리더들에게 가장 잘팔리는 대증요법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80년대생인 나는 세대론을 마주할 때마다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에서 책을 덮어버리곤 했다. 나 또한 밀레니얼과 Z세대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자존감, 투명성, 공정함, 솔직함, 워라밸' 등을 추구하며 살아왔으나 압도적인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압력 속에서 단지 이를 겉으로 드러내 보일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90년대생은 과연 우리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쯤이라도 되는 것일까? 그들은 단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주력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며 콧대 높던 전통 미디어와 리더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뿐이다. X세대 또한 이들을 어떤 것으로도 정의하기 힘들다하여 미지수 X가 붙은 채로 세상에 등장했고, 수천 년 전 점토 판에 새겨진 문구에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적혀있었다.




 세대론은 언뜻 명쾌한 리더십/소통 매뉴얼 같은 느낌을 준다. 허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일반화하기란 매우 어렵고, 편견이 가득한 채로 후배들을 속단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굳이 세대를 구분해야 한다면 기존 문화를 답습하며 “원래 그래왔어!”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기성세대 그리고 지금보다 나아질  있다면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을지라도 언제든 기꺼이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깨어있는 세대로 나눠볼  있지 않을까?


 나는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세대론에 갇혀 낀세대로 살아가기 보다 깨어있는 세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