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주 52시간제인가?
어떤 제도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제도가 추구하는 방향과 가치가
직원분들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적어도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꾸준히 진심을 전해야 한다.
사내 인사제도를 새롭게 기획하고 시행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욕을 먹어 힘들어하던 내게 팀장님은 힘이되는 조언을 건네셨다. 스쳐 지나가듯 말하셨지만 이 조언은 나에게 제도나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순간마다 몇번이고 본질을 떠올리게하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새로운 제도는 낯섦과 고통을 수반하기에 몇몇 사람들은 욕을 하기도 하고, 기존에 별 탈 없이 잘되어왔던 것과 쉽게 비교한다. 즉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전무결한 제도도 없고,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다 보면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20여 일 앞둔 오늘(12/12) 정부는 뜬금없이 이 법을 최대 1년 6개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 방안 중 가장 큰 웃음 포인트는 대기업을 포함해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업무량이 대폭 증가하거나 국가 경쟁력, 국민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연구개발 업무 등에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계도기간을 늘리면서도 기존에 제시한 범법행위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처벌하지 않겠다고 하니 취지에 공감하던 사람들은 이 발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들으며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보니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누더기 옷이 되어버린 주 52시간제. 이를 바라보는 평범한 회사원은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난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유래 없는 캐릭터 유재석 씨에게도 가끔 악플이 달린다. 수많은 견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강아지 강 씨 강형욱 씨도 가끔 공격적인 댓글에 상처를 받는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에서 몇 년 전 처음 발표한 주 52시간 근로제는 무조건 열심히 노오력하며 일하는 대한민국을 스마트하게 일하는 대한민국으로 변화시키려는 원대한 포부 같아 보였다. 실제로도 OECD 국가 중 노동 시간 대비 생산성이 매우 떨어지는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고, 이 제도의 본질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혁신이니 그 뜻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변화에 발맞춰 실제로 변화를 발 빠르게 준비하는 기업들도 증가했다. 기업교육에서는 스마트워크, 워크 다이어트 같은 주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실제로 주 52시간제를 대비해 서둘러 제도를 정비하고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던 우리 회사는 초기 약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월요일 출근길과 금요일 퇴근길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하나의 제도가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란걸 그때 깨달았다.
하지만 시행 후 여러 반대의견이 있었다. '주 52시간제, 국가가 일할 권리 뺏고 있다.'라는 자극적인 기사들은 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익명 앱 블라인드에서는 '갈리고 있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가 많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 시장 논리의 관점으로 이 의견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도 존재하기에 결국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어떤 방향을 갖는지 노동자를 우선하는지 기업을 우선하는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제도를 만들고 추진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어떤 기획이든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누더기가 된다. 권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내가 올린 보고서는 팀장님의 의견이 담기고, 실장님의 의견이 담기면서 뒤죽박죽이 된다. 결국 CXO레벨에서 그래서 뭐 하자는 거야?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기획안은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된다.
어느 대학원생의 논문 완성 과정을 고양이 그림에 비유한 짤인데, 회사생활과 겹쳐 여러번 웃은 기억이 난다. 시작은 창대하지만 교수님의 의견으로 인해 고양이 그림을 그렸던 대학원생의 논문은 코끼리 코를 가진 등에 팔이 달린 괴상한 고양이가 되었다. 지금의 주 52시간 근로제는 딱 이런 모습이다. 배경과 목적을 잃은채 방황하고 있는 코끼리코 고양이말이다.
정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습에 답답함이 든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노동자와 기업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버린 이 제도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