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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Dec 20. 2019

‘제목’을 순산하셨습니다.

좋은 제목은 고통과 함께 탄생한다.



제목 보고 왔다가 제대로 낚이고 갑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내 특강이 끝나고 설문지를 살펴보다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직원 한분이 날 선 피드백을 남기고 강의장을 떠난 것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무리수를 뒀었다. 오래전부터 섭외에 공을 들인 유명 강사님의 특강이었고, 강연료도 많이 투자한 터라 이번엔 기필코 200명 규모의 큰 교육장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최대한 관심을 끌 수 있도록 타이틀에 MSG를 마구마구 쳤다. 고심 끝에 정한 주제는 ‘전문가가 되는 완벽한 방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청 안내문을 올리기가 무섭게 신청자는 정원을 가득 채웠다.


 특강 당일 강연 내용은 좋았다. 참가자들의 몰입도도 높아 보였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종료 후 설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다 ‘제대로 낚였다’는 피드백을 마주한 순간 무척 속이 쓰렸다.


 뼈아팠다. 의견을 남겨주신 직원분의 소중한 시간을 뺐었다는 마음에 무척이나 죄송했다. 또 아차 싶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분과 같은 생각을 하셨을까? 그분에겐 주제를 통해 기대한 내용과 특강에서 전달한 내용이 180도 달랐던 것이다.


 ‘본문에 적혀있는 세부 내용을 좀 제대로 살펴보셨으면..’하는 못난 핑계가 떠오르려던 찰나 제목과 내용의 연결이 부족했구나 다시 한번 깨닫고 반성했다. 그후로 내가 땀을 쏟아낸 소중한 결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제목을 '순산하려는' 노력은 시작됐다.




잘 낳은 제목 하나 열 글 안 부럽다.


 장고 끝에 제목을 ‘낳는 것’을 감히 출산의 고통에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엄마 그리고 임신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내에게 혼날 짓이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 마케터, 기획자, 유튜버 등 불특정 다수의 분들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면 좋은 제목을 짓기 위한 고통에 공감하시리라. 제목을 순산하는 것은 공들여 만든 나의 콘텐츠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값진 일이기 때문이다.


 잘 낳은 제목 하나는 세상의 빛을 본다. 브런치에 글하나 태웠을 뿐인데 Daum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며 하루 만에 몇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여러 채널로 공유된 글은 또 다른 독자들과의 연결고리가 된다.


 내용까지 탁월한 글은 금상첨화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 더 나아가 행동에 영향을 주며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내비게이션 낚시꾼에게

월척으로 낚이다.


 아내와 삼척에 여행을 갔다가 역대급 낚시를 당했다. 저녁을 먹고 입이 텁텁해 커피숍에 들리기로 했다. 인스타로 찾아봐도 괜찮은 커피숍이 영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믿고 갈 수 있는 스타벅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마침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였다. 처음 온 동네라 자연스레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길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시내를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을 때 지도에 표시된 도착 예정지는 대로변이 아닌 뒷골목을 가리켰다.


스타벅스가 뒷골목에 있다고?


 아내와 나는 갸우뚱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순간 의구심이 들었지만 내비게이션을 믿어보기로 했다. 별 의심 없이 1~2분 더 들어갔을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와 함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스타벅스가 나타났다.







응? 네가 여기서 왜나와? 삼척의 스타벅스 ‘별다방’


 역대급 반전에 놀라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웃음이 빵 터져 멈출 수가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믿을 수 없어 내비게이션 한번, 간판을 한번 번갈아 쳐다봤다. 좁은 동네길에 넋을 잃고 잠시 서있었더니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제야 비상 깜빡이를 켜고 부랴부랴 자리를 피했다.


 ‘제목’은 스타벅스로 포장하고 내용은 ‘별다방’이었던 내비게이션 낚시꾼에게 제대로 낚였다. (물론 카페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가게를 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결국 편의점에 들려 커피를 샀다. 힘이 빠지기도 하고, 황당해 헛웃음이 나기도 하는 낯선 여행지에서의 깜짝 이벤트였다. 묘하게 특강 때 받았던 피드백이 오버랩됐다.




인기 작가님들의 글도

항상 빵빵 터지는 것은 아니다.


 궁금했다. 브런치 인기 작가님들의 제목과 그에 따른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그리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작가계의 메시, 호날두급이라면 모르겠으나 세상 당연한 이치처럼 인기 작가님의 글이라고 항상 폭발적인 반응이 터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다 싶었다. 과학적 접근으로 포장하긴 어려워도 어느 정도 제목과 흥행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글의 퀄리티와의 연관성까진 찾기 어렵더라도 말이다.


 우선 내가 애정하는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찾았다. 내 글 외에는 조회수를 확인할 수 없으니 구독자수와 공유수, 좋아요가 내가 획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였다. 이 3가지 변수로 훌륭한 주제가 갖고 있는 속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접근한 방법은 이렇다.


1. 애정하는 인기 작가님들의 대흥행글 찾아 제목, 구독자, 공유수, 좋아요를 엑셀에 기록한다.

2-1. 반응 지표를 설정한다. 높을수록 효과가 커야 한다. 공유수와 좋아요 수를 더하기로 했다. (현재 브런치의 좋아요 기능은 스크랩이므로)

2-2. 제목을 보고 속성을 부여한다. (보편성, 지적 호기심 자극, 신선한 용어 사용, 트렌드 등)

3. 구독자대비 반응률을 구한다. 신난 김에 나름 *ROI처럼 *ROS라는 용어도 붙여봤다!

*ROI(return on investment)
: 투자 대비 수익률
*ROS(reaction on subscribers)
:구독자 대비 반응률

4. ROS가 50% 이상인 글들에서 발견되는 공통 속성을 찾는다. (응?)


한낱 데이터분석을 꿈꾼 노가다가 되었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시작은 창대했으나 과정은 똥망진창이었다. 객관적 결과를 도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접근이었다. 변수가 제한적이었고, 상관관계를 찾기에 너무 많은 주관성의 오류가 포함될 것으로 보였다. 삽질로 끝난 프로젝트였다.


 결국 나름의 기준으로 설정한 ROS(구독자 수 대비 반응률) 비율이 50% 이상인 글들의 제목이 가진 속성을 디테일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언처럼 삽질은 나름의 인사이트를 줬다. 구독자분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제목을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정리한 이 과정이 앞으로도 좋은 제목을 탄생시키는데 나름의 힌트가 되지 않을까?





[좋은 제목이 품고 있던 5가지 속성]

* 작가님 성함이 반복되어 존칭을 생략했다. 혹시라도 보신다면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드린다. ^^;


보편성과 공감

정문정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
윤희정 :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두 작가님의 제목은 보편적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는 살면서 ‘나도 욕할줄 모르는 거 아닌데’라며 입술을 꽉 깨물게 만드는 무례한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님에 대한 행복한 추억 혹은 가슴 시린 기억을 갖고 산다. 이런 보편성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제목은 넓은 타겟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제목을 보고 당장 글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지적 호기심 자극

Daniel : 배달의 민족은 게르만 민족이 된 걸까
신소영 : "일이 잘 안 될 때는.." 영자 언니의 '고퀄' 조언
박소연 : 회사에서 일보다 인간관계가 문제라고요?
장영학 : 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브런치 플랫폼 특성상 지적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다. 나도 브런치를 처음 접한 것이 조직문화와 관련된 글이었고, 이후 브런치를 통해 관심 있는 심리학, 조직문화, 리더십 등에 대한 지식과 관점을 확장하는 것에 큰 도움을 받았다. 평소 갖고 있던 고민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제목이라면 우리의 호기심은 묻고 더블로 간다.


트렌디함과 신선함

박창선 : 판교사투리에 대해 알아보자.
박창선 : '넵'병을 심층탐구 해보았다(feat.아무말대잔치)
장영학 : 조직을 말려 죽이는 micromanager
기며니 : 펭수는 자폐아를 닮았다
브랜딩인가HR인가 : HR의 브랜드적 접근: 내부 브랜딩


 새로움은 언제나 우리의 동공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신선한 용어와 트렌디함이 만났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증폭된다. 한때 브런치에 펭수를 포함한 제목이 메인 페이지를 수없이 장식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제목이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면 1타 2피가 되기에 충분하다.


역설형

정문정 : 가난하면서 관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박소연 : 직장생활 선 긋기 기술 -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Daniel : 학벌 좋다고 딱히 일 잘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았을때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넘어 뇌가 번뜩일때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했을때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학부시절 철학 강의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에 대해 자세히 바라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할 때 우리는 열광한다.


집대성, 몇 가지 방법 시리즈

박창선 : 회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50가지 유형의 사람들 대정리
박창선 : 대표님들을 위한 사업 생활 디테일50가지

 

 집대성, 몇 가지 방법 시리즈는 내용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주제다. 자칫 나열식으로 흘러가 지루할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제목이지만 작가님의 글은 유머와 공감으로 독자들을 흡입력 있게 빨아들인다. 실제로 글을 몇 개 읽다 보니 제목이 무엇이 됐든 믿고 읽게 됐다. 글을 찰지고, 재미있게 쓰기 위해 꾸준한 관찰과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제목. 순산하셨나요?


 우주대스타를 광고모델로 쓴 게임도 사전 예약을 위해 수십억의 광고를 집행한 게임도 결국 게임이 재미없으면 유저는 금세 떠나간다. '좋은 제품은 최고의 마케팅이다'라는 말처럼 핵심은 콘텐츠임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제목을 '낳아야'하는 이유는 세상과 나의 콘텐츠를 잇는 강력한 힘 때문이다.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고 16개의 글을 썼다. 발행 타이밍의 문제인지 제목의 문제인지 현저히 조회수가 떨어지는 글들이 있다. 모두 한결같이 사랑으로 키운 내 자식이지만 아픈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그들도 언젠가 세상을 만나 소통하길 기대했다. 동시에 내가 붙여준 그들의 제목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담았는지 곱씹게된다.


'제목'님을 순산하셨습니다.

 

 이 글은 보편성과 공감 요소를 활용해 주제를 정했다.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주제 정하기의 고통을 떠올렸다. 더 나아가 글에 생명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글이 부디 순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길 바랐다.


 돌이켜 보니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의 설렘, 처음 아내와 산부인과에 손을 잡고 가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의 벅찬 감동처럼 좋은 제목을 고민했던 이번 과정도 내게 큰 행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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