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의 방과 후 일상
나는 유럽의 여름을 참 좋아한다.
쾌청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은 풀과 나무를 더욱 푸르러 보이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생동감은 내게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활력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밤 10시가 가깝도록 하늘이 훤하다는 점은 '저녁'에도 야외활동을 충분히 즐길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마냥 늑장을 부릴 순 없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16시 30분이 넘는데,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18시 이전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들과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자니 바이로이트엔 아름다운 명소와 즐길거리가 참 많았다.
그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 변경백 오페라 극장 (Margravial Opera House)에 갔던 날을 회상해보려고 한다. 혹시 바이로이트에 가게 된다면 이곳 하나만큼은 꼭 보고 오시라 추천하고 싶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 같이 캠퍼스를 떴는데도 극장의 마지막 입장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도착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밋밋한 익스테리어와 정반대의 화려함이 펼쳐졌다. 밖에선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장관이다. 뜬금없는 비약일지 모르지만, 미리 알아보고 오지 않는 이상 이곳의 존재조차 모른 채 지나친 사람도 꽤 있었을 듯싶었다. 현장에서 조금 더 강렬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구글 맵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미리 보지 않을 것을 권한다.
마감을 눈앞에 둔 무렵이었기에 극장 전체가 우리 다섯 명만의 프라이빗 투어처럼 느껴졌다.
구경을 마치고 슈니첼에 맥주 한 잔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작은 골목길 위에 자리한 식당은 테이블마다 차양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여전히 해가 하늘 높게 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가 아니라 두 번째 점심 식사라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나를 제외한 4명의 친구들은 모두 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었고, 당연히 나이 차이도 꽤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역시 내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형, 누나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릴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한두 학번 위의 선배와 말할 때보다, 일고 여덟 살 터울의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언어가 달라서일까? 문화의 차이일까?'로 시작된 생각은, '내가 이 친구들의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까지 이어졌다.
장소를 옮겨 조그마한 운하에 앉아 젤라토를 먹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하다, 숙소로 돌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분주하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고, 느긋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