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1) 내용물은 아직 아기
"북한도 무서워하는 중2들"
대체적으로 그런 문구들은 중2아이들의 천방지축 미성숙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까지 쭉 고등학생만 주로 가르쳤던 나 또한 중학생을 만나기 전부터 중학생이 무서웠다
모르기 때문에
나혼자 무시무시한 상상들을 해왔다.
화난 중2아이가
낫을 들고 학교에 온다거나ㅡ
수업중 대놓고 욕을 한다거나
정당한 지도나 지시를
모욕적으로 무시한다거나 하는
상상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
#1. 나는 개똥벌레
1교시가 끝나고 여학생 셋이 심각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 말씀드릴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승준이가 자꾸 저 때리는 동작 하면서 손을 치켜 올려요. 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도 계속요."
"저는요, 체육 시간에 승준이가 계속 발로 제 신발을 툭툭 건드려요.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해서 짜증나요."
그외에도 승준이의 행동으로 인해 불쾌하고, 함께 있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다행히 나머지 한 명은 그 두명을 그냥 따라온 아이였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보니, 당장 승준이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가 많지만 잠깐 미뤄두고 교실에 있는 승준이를 불렀다.
"승준아, 선생님이 확인할게 있어서 불렀어."
"저번에 교실 옆에 지나가다가 보니까 옆 짝꿍한테 때리는 동작처럼 손을 들던데, 왜 그런거야?"
승준이는 고개를 푹 숙인다.
시간이 지난 뒤 승준이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아..그거요.."
"옆에 짝이랑 책상 선 넘어오면 한대씩 맞기로 했거든요. 근데 제가 넘어갔을 때는 때리고 자기가 넘어 왔을 때는 안 맞으려고 해서 그런 거예요."
'선 넘어오면 다 내꺼'라고 하던
구한말 시대의 장난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치, 담임을 '담탱이'라 부르는 아이를
지금 시대에 접했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그런 장난을 했던 거야? 그건 내가 ㅇㅇ이한테도 이야기할 테니까, 앞으로 그런 때리는 장난은 하지 마. 장난으로 시작해도 나중에는 감정만 상하고 관계에도 도움이 될게 없으니까."
"네.. 혹시 ㅇㅇ이가 뭐라고 이야기했나요?"
"아니,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보고 무슨일인가 해서 물어본거야."
"그리고, 혹시 체육시간에 ㅁㅁ이 발을 툭툭 찬 적이 있니?"
승준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아무말 없다.
말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니 말 대신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저는 늘 그랬어요. 여자애들이 저를 그런식으로 싫어했어요."
생각보다 뿌리가 깊은 일인 듯한 예감이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저는 친해진다고 다가가는데 상대방은 늘 저를 그런식으로 생각해요."
"아, 그러니까 승준이가 발로 툭툭 친 행동은 친해지고 싶어서 한 행동이야?"
"…"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렇지 않다니, 그러면 그건 상대방에 대한 폭력인데?"
승준이는 다시 대답이 없다.
두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가며..
"저는 형이랑 장난칠때 그렇게 치거든요. 친하니까…"
승준이는 형과 그런 장난을 치면서 애정 아닌 애정을 표현해왔고
그것을 여학생에게도 똑같이 한 것이다.
예민과 감수성의 최정점을 달리는 중2 여학생에게,
관심의 표시로 툭툭 건드리는 발길질이라니....
생각으로도 아찔하다...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승준아, 만약에 누가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발로 툭툭 차면 어떨것 같아?"
"그것도 너보다 훨씬 덩치가 큰 마동석 같은 사람이 그런다면?"
"음... 기분이 좋지는 않을것 같아요."
"맞아, 선생님은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승준이의 평소 모습을 봤을 때,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한게 아니란걸 알아.
다만, 이제 여학생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지내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워야 돼.
네 또래의 여학생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깨질 것 같은 유리잔처럼 대해야 돼.
정말 정말 조심스럽게."
승준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저는 역시 뭘 해도 안 되나 봐요."
다시 연신 눈물을 훔친다.
반에서 키도 덩치고 제일 크고 목소리도 성우처럼 멋있는 승준이가,
말 한마디에 이렇게 울음을 터뜨리다니..
"아니야 승준아, 지금은 배울 나이야. 공부도 공부지만 관계도 배워 나가는 거야. 선생님은 승준이가 잘못해서 혼내는게 아니고,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의 역할을 하는거야. 학교는 배우는 곳이잖아. 승준이가 관계를 잘 맺어갈 수 있도록 좀더 나은 방향을 알려주려는 거야."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것 같아요."
그동안 쌓아왔던 라포 때문이었을까
승준이는 다행히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그래, 처음에는 쉽지 않을거야. 그래도 선생님이랑 같이 잘 해 나가보자.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풀어 나가보자."
"그리고 앞으로는 때리는 시늉이나, 툭툭 치는 행동은 금지."
"네, 그건 앞으로 절대 안 할 거예요."
반에서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웅장해서
겉으로 보기엔 어른 같아 보였는데
아직 여물지 않은,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승준이는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툭툭 발로 건드리는 대신, 말로 먼저 다가가 보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금세 모든 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듬직한 겉모습을
멋지게 가득 채워 줄,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마음의 언어'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배워가기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천천히,
그 마음을 건네는 법을 함께 배워 나가기를.
어른 같은 얼굴 뒤에
아직
아이 같은 망설임이 있다
듬직한 겉모습 뒤에 숨은
연두색 작은 주먹을
하루에 한 손가락씩 편다
툭툭,
몸짓으로 건네는 인사
그저, 친해지고 싶다는 서툰 표현
말이 아닌 말,
형태 없는 언어를 배우는 시간
괜찮은 척 말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지금
앞으로도, '괜찮아 보이는' '듬직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서 외로이 혼자 눈물을 삼키며
좀더 오래 괜찮은 척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겠지
아직은 그런 것들이 쉽지 않겠지만
괜찮은 척이 아닌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