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가 더 좋아요?

feat. 사랑? 웃기지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얼마야? 얼마면 돼?

by 시쓰는국어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서는 작은 체육대회가 열렸다.

수련회 대신 마련된 2박 3일의 대체 일정 중 마지막 하루였다.

전날까지는 일일 체험학습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날은 운동장과 복도, 교실을 모두 활용해 미니 체육대회를 열었다.


공 굴리기, 고깔 세우기, 줄다리기, 경보 계주...

우리 때처럼 꼭두각시 춤이나 부채춤, 콩주머니 던져 박 터뜨리기 따위는 더 이상 없었다.

아이들은 훨씬 세련된 장비와 빵빵한 음향 속에서

세 시간 내내 놀고, 달리고, 웃으며 시간을 꽉 채워 보냈다.


체육대회가 끝난 후에는 보물찾기를 했다.
교내 2, 3, 4층 '안전한 곳'에만 숨긴 보물.

아이들 안전지도를 하면서 사실 나도 한 개 찾았다.
보물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넘겨주기는 했지만.


아무튼,

3층에서 4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안전지도를 할 때였다.

별안간 가은이가 얼굴을 뿅 하고 내밀며 나타나더니,
"선생님!!" 하고 부른다.

초롱초롱한 눈빛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는 바짝 다가와 대뜸 말한다.


"세린이랑 저랑 둘 중 누가 더 좋아요?"


예측하지 못한 순간

예측하지 못한 질문

두 박자가 딱 맞아 떨어져 당황케 만들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답변해야 될지

짧은 순간이지만 수백번 망설였다.
누구 한 명을 고르는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진심을 다해 묻고 있었고,
그 물음에 성심껏 답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 눈빛의 빛을 꺼뜨리고 싶지가 않았다.


"응, 둘 다 좋지 당연히."


"둘 다 말고요!! 딱 한 명만 골라야 돼요. 딱 한 명만!!"

"세린이는 세린이대로, 너는 너대로 좋지 당연히.
서로 다른 사람인데 둘 중 한 명을 어떻게 골라."

"그래도 딱 한 명만 선택하셔야 돼요. 딱 한 명만."

‘딱 한 명’을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 손을 받치고 있다.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

"야, 윤서랑 나 중에 누가 더 좋아?"라고 말하던 민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큰일 나는데…’


소소하지만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네? 세린이는 수업시간에 잠도 자고요, 졸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국어쌤이 2등으로 좋다고 했어요. 근데 저는 1등이란 말예요. 1등이요!"


‘그래, 까짓거.
좋다고 말해주는 게 그렇게 큰 일도 아니고…’


아이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니,

‘누가 좋긴 누가 더 좋아.
수업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이 더 좋지’라고 말하며 휙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래, 가은이가 더 좋아." 라고 말했다.


마치 그 계단을 지나가려면
필수적으로 말해야만 하는 통과의례를 거친 느낌이었다.


가은이는 얻어야 할 것을 얻은 듯이

"아싸!! 국어쌤이 나 더 좋아한다고 하셨다!!
다 소문 내야지!!"
라며 폴짝 계단을 뛰어 올라가 복도를 뛰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문...? 음…’


내가 잘 대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저 아이에게만큼은 잘 대답한 것 같기도 하다.


'고작 그 작은 대답으로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아이는 그것을 얻었을까.'


우리는 어른이 되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줄 알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계속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가요?”
“나는 사랑받고 있나요?"


아이들의 "누가 더 좋아요?"라는 질문도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나는 당신에게 특별한 존재인가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이렇게 성실히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는걸 보면 너는 앞으로 뭐가 되도 되겠다."라던 선생님의 짧은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 삶을 두 팔 벌려 지켜주는 것처럼..


나의 짧은 대답이,

한 아이에게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믿음이었기를.


그 믿음이,

잔잔하게 빛나는 잔등처럼

오래도록 따뜻하게 머물러주기를.





p.s. 다음주가 좀 걱정된다^^;; 소문 내지 말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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