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와 진지 사이

feat.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

by 시쓰는국어쌤

중학생을 가르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2019년 이후로는 계속해서 고등학생들만 가르쳤으니 6년만인가?

그때 만난 중학생들은 북한에서 온 아이들이었고,
우리나라(?) 중학생들을 가르쳤던 건 2012년이 마지막이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13년 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은 세대가 다른 것 같다.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정말 크다.



#1. 퉁퉁이들의 필통 전쟁


수업시간에 임박해 교실로 달려갈 때의 일이다.
종치기 일보직전의 급박한 상황과는 달리,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심각한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까불까불한 두 명의 중2 남학생.
그날따라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업이 너무 바빠 빨리 지나치려 했는데, 둘 중 한 명이 나를 멈춰 세운다.

화가 잔뜩나 퉁퉁 부어있는 모습이다.


퉁퉁이1: "선생님, 얘가 제 필통 숨겼어요. 평소에도 제 물건 아무렇게나 쓰고 안 돌려주고 그랬어요."


퉁퉁이2: "니가 먼저 내 필통 계속 숨기고 그랬잖아."

"선생님, 그리고 얘가 제 필통을 어떻게까지 한 줄 아세요? 쓰레기통에까지 숨겼었어요."


나: "왜 그런 건데?"


퉁퉁이1: "그건 장난 치느라 그런 거죠. 원래 둘 다 그런 장난 많이 쳤었어요."


정리해보자면 그렇다.
둘은 서로의 물건을 숨기며 장난을 쳤다.
그러나 점점 찾기 어려운 곳에 숨기면서 장난의 강도가 세졌고,
결국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장난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잘 들어, 이제부터 너희가 이 문제를 잘 풀고 해결하더라도 다시는 상대방의 물건을 숨기는 장난은 치지 말아야 돼.
이렇게 서로의 물건을 숨기면서 장난을 치면 처음에는 재미있더라도
나중에는 감정이 상하게 되니까."


퉁퉁이1,2: "네..."


"감정이 상할 정도로 장난을 치는 건 장난이라고 할 수 없어. 이 자리에서 선생님하고 약속해. 더 이상 상대방 물건 숨기는 행동 하지 않는다고."


퉁퉁이1,2: "네, 다시는 안 할게요..."


"그래, 그러면 필통 숨긴 것 돌려줘."


퉁퉁이1: "저기 있어."


퉁퉁이1이 전혀 필통이 없을 것만 같은 구석에 손짓하며 필통이 있는 곳을 자백한다.


퉁퉁이2: "어디 있는데?"


퉁퉁이1: "저기 있잖아."


의자와 의자 사이 미세한 틈새에 세로로 정교하게 세워진 필통을 꺼낸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에서 숨은 그림을 꺼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숨길 수 있을까.’
그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풋!"하고 웃어버렸다.


퉁퉁이1,2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다음부터는 끝까지 잘 참아야지…’



P.S. 퉁퉁이1이 필통을 숨겼던 곳은 바로 저 동그란 의자와 네모난 의자 사이 틈새이다.

나도 나중에 뭔가 숨길 일(?)이 있으면 저곳을 활용해야겠다.




#2. 안 사귀는 억울함


이번에도 너무 바쁘게 이동하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선생님…"


옆반 중2 여학생이 눈물이 막 쏟아질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불러 세운다.


"응? 무슨 일이야?"


"저, 옆반 ㅇㅇ이랑 안 사귀는데 애들이 사귄다고 소문 내고 다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데?"


"ㅇㅇㅇ이요…"


"그래? 알았어. 선생님이 애들이랑 그 아이 불러다가 얘기할 테니까 너는 일단 담임 선생님께 가서 그 상황을 말씀드려."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단 아이를 담임 선생님께 보내고,
소문을 낸 두 명을 차례대로 불러 진상 조사를 시작했다.


"니가 그 두 명 사귄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니?"


"네, 제가 얘기한 거긴 한데 저도 ㅇㅇ이한테 듣고 말한 거예요."


"그냥 듣고 전달한 거야? 사실도 아닌데?"


"네… 저도 그냥 들은 거라…"


"누가 너에 대해 사실이 아닌 얘기를 전달하면 어떨 것 같아?"


"기분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더 이상 전달하면 안 되겠지?"


"네…"


"그래, 그러면 전달하지 말고, 가능하면 전달했던 아이들한테도 아니라고 이야기 좀 해줘.

전하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재미로 하는 거겠지만,

그 당사자는 굉장히 기분 나쁘고 당황스러운 상황일 거야."


"네, 그럴게요."


인사를 꾸벅 하고 돌아서서 간다.

그리고 또 다른 소문낸 아이도 불러서 똑같이 이야기하고 돌려보냈다.


그 사이 와글와글했던 소문은 잠잠해졌고,
울먹이던 아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다시 보았을 때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중학생들이 이런데,

초등학생들은,
유치원생들은,
어린이집 아이들은 또 얼마나 소소한 문제로 다투고 갈등을 겪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중재하는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황당할까?


처음에 아이들이 이런 일로 나에게 찾아올 때는 마냥 귀엽고 웃겼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들에게는 이것이 전부다.

나에게 귀엽고 웃긴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비수가 될 수도 있고
평생에 걸쳐 못 잊을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토요일 방과 후,

한 친구와 다툼이 있었는데,
꽤나 감정적인 다툼이었다.


아이들은 그걸 구경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고,
나는 누군가가 말려주기를 바라며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 얘가 ~~라고 했어요."


대충 이렇게 어설픈 말로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싸움을 계속 구경하고 싶었던 주변 아이들은,


"별거 아니에요 선생님, 그냥 가세요."


"너는 이런 별거 아닌 걸 선생님한테 이르냐?"


라면서 선생님을 돌려보내려 했고, 선생님은


"아, 너네들끼리 잘 해결하고 얼른 가."


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버렸다.

그때 싸운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돌아서던 그 선생님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구세주인줄 알았지만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느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 싸움을 멈춰주기를 기대했다.
감정적으로 다투는 우리 사이에 개입해서
좀 더 어른스러운 관점으로 그 상황을 정리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깨져 버렸고,
그 파편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았지만
그 파편은 흉터로 남지 않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는 싹을 틔웠다.


그런 교사는 되지 말아야지.


앞으로, 중학교 교사로서의 시선으로
때로는 좀 더 세밀하게 동공을 좁혀
이들의 마음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웃는 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울어야지.

그 상처가 싹이 되어 꽃을 피우게 되었다.
봄꽃 같은 아이들과 앞으로도 잘 어우러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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