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담임은 ○○이 필요 없다?!

feat. 웃음 장벽 낮은 교사의 중학교 생존기

by 시쓰는국어쌤

#.1. Head

"선생님 저 머리가 아파요. 집에 가야 될것 같아요."


생전 존재감 없이 조용히 자기 할일을 하는 아이

조용히 웃고 지각하지 않고 성실한 아이

나는 이런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런 아이였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런 아이1이 처음으로 뭔가를 요청한다

머리에서부터 목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턱끝까지 찬 목소리로


"아침부터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방금 체육 시간에 농구공으로 머리를 맞아서 더..."


세상에..

무정하기도 해라

운명의 장난이라 해야되나

우는아이 뺨때리기도 아니고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데 체육시간에 날아온 공에 머리를 맞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퇴를 하려면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확인해야 한다.


"어머니께 전화 걸어서 쌤 바꿔줘."


아이가 슬며시 건넨 전화기,

이름으로 저장된 네 글자

'최.종.보.스'


여기서 1차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 이미 뇌에서는 웃음경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덤덤한 표정을 한 채 덤덤한 목소리로

농구공으로 머리를 맞았다고 할때부터

살짝 웃음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삐용삐용. 웃음경보 발령 웃음경보 발령.

여기는 학교다. 너는 교사다. 웃음을 참아라. 참아야된다. 삐용삐용.'


아이에게 엄마는 최종보스였던 것이다.

최종보스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아이는 조퇴할 수 있었다.


병원에 꼭 가라는 말과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요즘 학교 내에서 비형 독감이 유행이니까 가서 검사도 꼭 한번 받아봐."


이 말을 들은 아이는 한참을 주저하더니..

"저..근데 선생님"


"응? 말해봐."


"저는 B형이 아닌데 B형 독감에 걸릴 수가 있나요?"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웃음 경보가 이제는 제 기능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이미 속으로 울고 있었다

웃참 실패는 나의 국어교육과 2학년 시절부터 이어져온 꽤 역사 깊은 일이기 때문에, 이 상황이 오면 긴장이 될수밖에 없다.


(국어음운론 시간-유사모음 발음 반복해서 들을 때 웃음 터짐/현대시교육론 시간-시낭송 들을 때 웃음 터짐. 그냥 터진게 아니라, 참느라 웃느라 눈물이 줄줄 났고 등이 땀으로 다 젖음. 나때문에 옆사람들도 다 웃음.)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그..그치. B형독감은 독감의 종류를 말하는 거라, B형이 아니어도 걸릴 수 있어."


목소리가 좀 떨렸지만 잘 넘겼다.


"아, 그렇군요. 네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그래 얼른 가봐('얼른'을 강조)"

꾸벅 인사하고 돌아선다.


다행이다..

나는 위기를 잘 넘겨서 다행이고

아이는 그 B형 독감 질문을 중2때 해서 다행인것 같다.




#.2. 엿장수 맘대로

스승의날 아침이었다.
다급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채윤이와 세영이.


"선생님 지금 상민이랑 민호 싸움났어요!!"


세상에나, 터질 것이 터졌구나.
이렇게 스승의날 아침에 큰 선물을 받는구나.

그 둘은 예전부터 조마조마했던 터라, 놀란 마음을 붙들고 교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절반쯤 뛰어갈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길잡이처럼 앞에 뛰어가는 채윤이와 세영이의 속도가 너무 일정했고,
그 뒷모습에 전혀 긴장감이란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교실을 들어서니 앞에서 싸우는 이 두 명, 말리는 이가 각각 한 명씩 붙어 두 명으로,
아주 깔끔한 구도였다.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매우 해맑았고, 그들의 얼굴에서도 긴장감이란 1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싸우는 이들의 얼굴에도 전혀 구김살이 없고,
말리는 이들은 심지어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속아 줬어야 했는데...
속아 줬더라면 재미있었을 텐데...

웃음 장벽이 낮은 나는 차마 그러질 못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겨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웃음을 참으며 그 상황을 연출하던 이들도 와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기획했던 이벤트는 처참히 망했지만,
고운 그림과 메세지가 담긴 롤링페이퍼가 그 상황에 생기를 불어 주었다.


별것 아닌 메세지들이 적혀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기특하다고 생각한 점은
'스승의날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쓰지 않은 점이다.


"스승의 날은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야."


두어 번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새겨 들었다니
내심 대견했다.

다 자라지 않은 손과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씨,
나름대로 기획한 엉성한 이벤트.

그 모든 것들이 어딘가 귀엽고 기특했다.


사실 상민이와 민호는 평소에도 자주 티격태격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꽤 잘 아는 사이였다.
말은 험하게 해도, 중요한 상황에서는 서로 눈치를 보곤 했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짠 싸움극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매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웃음을 나누는 방식, 마음을 전하는 방식,
그리고 함께 시간을 채우는 법을.


아이들 덕에 오늘이 조금 특별해졌다.
엉성한 장난과 삐뚤빼뚤한 손글씨가, 내 마음엔 꽤 정확히 닿았으니까.

우리는 이 시간을 함께하며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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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담임은 개콘이 필요 없다.

개콘을 보지 않아도 중2 담임은 평생의 웃음을 채울 수 있다.

특히 나처럼 웃음 장벽이 낮은 사람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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