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유치원 졸업식을 했어요. 에스더반 친구들과 모여 검은색 망토와 사각형의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어요. 부모님도 찾아와서 꽃다발을 건네주었고요. 사실 졸업식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 유치원에 가지 않는 거래요.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지 못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대신 국민학교에 가면 된대요.
국민학교에 가면 무얼 할까요? 국민학생 언니, 오빠들을 보면 어른 같아요. 저도 그렇게 될까요?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너무 기대가 돼요. 저는 선생님이 너무너무 좋거든요. 왜 좋은지는 저도 몰라요. 선생님과 인사라도 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귓가가 간지럽고 저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게 돼요.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게 되겠죠? 어떤 교실에서 공부하게 될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아요. 유치원과 비슷한 분위기일까요? 유치원 친구들을 국민학교에서도 만나게 될지 궁금해요.
오늘은 곧 국민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할 저와 함께 첫 등교 준비물을 챙겨 보아요.
겟 레디 윗미, 레츠고~.
제일 중요한 것은 책가방이에요. 매일 들고 다니니 튼튼한 것을 골라야 하죠. 튼튼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에요. 예쁘지 않으면 가지고 다니고 싶지 않잖아요. 엄마와 가방을 사러 가서 어떤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디자인인지 치열하게 생각했어요. 형태는 란도셀로 정했어요. 이건 국민학교 입학할 때 ‘국룰’이라고 할 수 있어서 사실상 제 선택은 아니지만, 뭐 불만은 없어요.
란도셀이 뭔지 모르신다고요? 흐음, 언니 오빠들에게는 낯설 수 있겠네요. 란도셀은 사각형으로 각진 형태의 가방이에요. 버클이 달려있어서 책가방 윗부분을 뚜껑처럼 들어서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죠. 일본 소학생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하지만 80~9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차분한 느낌이 아니랍니다. 합성 비닐 소재로 만든 빨강, 파랑의 강렬한 원색의 가방이에요. 백팩은 고학년에 올라가야 들고 다니니까 적어도 이 가방을 삼 년간 사용할 거예요.
제 선택은 진한 분홍색 [천사소녀 새롬이] 가방이에요. [천사소녀 새롬이]는 제 또래의 여자아이가 마술의 힘으로 어른이 되어서 가수로 활약하는 만화 영화랍니다. TV로 열심히 보았는데 작년에 종영했어요. 지금은 [달려라 하니]를 이어서 방영하고 있어요. 방영 중인 하니가 인기가 높지만, 역시 새롬이가 더 좋아요.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소중히 하는 뚝심이 필요하겠죠?
이제는 가방 안을 채워보아요. 자고로 국민학생이라면 다기능 필통이 제격이죠. 비스킷 상자 크기의 이 필통은 위아래로 각각 열려요. 위에는 연필을 4자루 넣었고, 밑에는 사인펜 등을 수납했어요. 놀랍게도 측면을 살짝 누르면 지우개를 넣을 수 있는 서랍이 나온답니다. 겉면은 폭신한 재질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방 안에서 움직여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아요.
네모난 칸으로 나뉜 노트를 준비했어요. 한글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된대요. 부끄럽지만 아직 한글 쓰는 것이 미숙하답니다. 입학 전부터 엄마와 아빠에게 배웠는데, 재미도 하나도 없고 잘 외워지지 않아서 곤혹스러웠어요. 듣기로는 아침마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어 주신 내용을 국어 공책에 정갈하게 옮겨야 한대요. 행동이 느리다고 엄마한테 핀잔 듣는데 잘 해낼지 걱정이에요.
연습장은 아마 모두 같은 제품일 거예요. 겉은 단단한 검은색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고, 안은 갱지로 되어서 끈으로 엮어서 만든 그 제품이오. 알림장은 숙제나 전달 사항을 적는 데 필요해서 같이 구매했어요. 마지막으로 교과서를 잊지 말아야겠죠? 교과서는 모두 세 권이에요.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교과서는 매일 사용하니까 가방에서 뺄 일은 없을 거예요.
내일 드디어 첫 등교를 해요. 엄마가 물통과 손수건도 챙겨줬어요. 이제부터는 학교까지도 혼자 가야 하고, 학교에서도 스스로를 챙겨야 한대요. 잘할 수 있겠죠? 저는요, 새롬이처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마법의 힘이 없으니 마음이 조급해도 참아야겠죠? 제가 멋진 어른이 될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오늘 영상은 여기까지예요.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