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조금 사용함)
한 달에 한 번, 작가님들에게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다.
그 달에 재미있는 이슈, 업데이트 된 기능, 서점 그리고 독자 피드백 등을 메일로 정리해서 보낸다. 그 달에 있었던 일을 작가님에게 공유하는 목적이다.
한 달에 한 번 보내는 뉴스레터를 이번 달에는 한 번 더 보냈다. 게다가 단 하나의 주제로 말이다.
말인 즉슨 비상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빨리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어떤 내용이길래 급하게 보낸 것일까?
뉴스레터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기존 원칙
- ai 활용 원고 자체는 반려하지 않았음.
- ai는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고, 긍정적으로 보는 독자도 있음.
단, 선결 조건 두 가지
1. ai 개입 시 저자명에 ‘ai’ 표기
2. 작가의 생각·철학이 반드시 담겨야 함
새로운 조치
1. 원고에 작가 고유 시각·경험이 반드시 포함돼야 함
2. ai 개입 시 저자명에 ‘ai’ 표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
3. 퇴고 없는 무책임한 원고는 예외 없이 반려
취지
- 창작 제한이 목적이 아님.
- 독자가 안심하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약속.
- 성실한 작가를 보호하고, 신뢰를 높이는 조치.
어제 밤에 이 내용으로 뉴스레터를 보냈더니,
꽤나 많은 답변이 왔다. (통상적인 뉴스레터는 답변이 거의 없다)
답변을 보아하니 3가지 유형이 있었다.
지지/공감형
'당연히 있어야 할 기준이다'
'우리 출판사는 애초에 AI 안 쓰거나 철저히 퇴고한다'
정책 취지에 적극 동의
철학/문제 제기형
ai 활용 비율을 어떻게 봐야 하냐
ai 창작 시대에 규제가 발목 잡지 말아야 한다
'결국 사람이 선택했다'라며 역사적/철학적 의미까지 언급
걱정/확인형
내 원고가 반려 대상인지 궁금하다
이 피드백이 내 책에 해당하는 건지 확인해 달라
이미 수정 중인데 반영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 시작)
'맞습니다. 애초부터 이런 기준이 있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작가님들부터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데 왜 그러냐'라는 작가님까지 작가님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주셨다.
한편 AI를 활용해 공장처럼 전자책을 '찍어내는' 몇몇 회원들의 답장을 기대했건만 이 분들에겐 답변이 오진 않았다.
흥미로웠던건 '그래서... 내 원고는 반려될까요?'라는 걱정 섞인 답변이었다. 본인의 원고가 반려될지 걱정하시는 분들의 원고를 다시금 꺼내봤다. 'AI를 활용했습니다'라는 표기가 없다면 본인이 쓴 글로 보일 만큼 잘 쓰셨다. 퇴고도 완벽했으며, 말투도 개성있었다.
왜 반려될까 걱정할까?
여전히 많은 작가님들은 '진짜 작가라면 글은 혼자 힘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AI 사용은 치부처럼 다가올 수 있다. 마치 시험에서 커닝페이퍼를 봤는데 '실력으로 풀었다'고 말할 때의 그런 기분처럼 말이다. 그래서 글 쓸 때 AI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받았다면, 괜히 이걸 숨기고 싶고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구석이 생긴다.
결국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온전히 내가 쓴 글이라면 찔릴 이유가 없고, 반대로 AI를 제대로 활용해서 완성도 높은 글을 만들었다면 이 역시 찔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사이 어딘가,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 있을 때다.
AI 시대의 창작은 마치 시소 같다. 한쪽에는 AI가, 다른 쪽에는 인간인 '나'가 앉아있다. 중요한 건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AI가 기술과 스킬의 무게로 한쪽을 누르면, 나는 경험과 철학, 그리고 생각의 무게로 다른 쪽을 균형 맞춘다.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는 재미없다. 적당한 균형점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때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창작이 나온다.
정말로 이런 균형을 잘 맞춘 사례가 있을까?
'심통봇'이라는 유튜버가 기가막힌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만들었던 뮤직비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퀄리티다. 아래 링크가 있으니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 영상에서 눈에 띄는 댓글이 있다.
공감한다. 붓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반 고흐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고, 카메라도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사진이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로 무엇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우리가 찔렸던 이유가 잘못된 지점에 있었던 것이다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가 아니라 '그걸로 무엇을 만들어냈느냐'가 진짜 기준이어야 한다.
'AI를 활용한 원고는 이제 유통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했지만, 진짜 기준은 이거다.
AI와 균형을 이루며 시소를 탔느냐, 아니면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구경만 했느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