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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한 달 여행, 템플스테이

지리산 산청 대원사

by 오은오

'한 달 여행을 계획 없이 다니자'라는 첫 마음가짐은 아주 잘 실행하고 있다. 내일 갈 곳은 전날 밤 혹은 당일 아침에 결정해서 움직이는 여행은 누가보면(J) 속터질 수 있지만, 누군가는(P) 이해할 수도 있는 여행이다. 이런 여행 중 내가 유일하게 딱 하나 계획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템플스테이는 꼭 경험해보자'였다. 친가/외가 모두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오래 전부터 절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그래서 절에 가보고 싶었나보다. (실제로 스님은 이것이 인연이라고 하셨다)


전날 통영의 게스트하우스. 밤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통유리창 앞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구글에서 '템플스테이'를 검색했다. 검색창 최상단에 눈에 띈 사이트가 바로 이 사이트.


캡처.png https://www.templestay.com/ 지역별로 템플스테이 사찰을 찾아보고 예약할 수 있다.


이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예약할 수 있다. 지금 통영에 있고, 주말엔 친구 결혼식이 있으니 대전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통영에서 대전가는 중간 길에 템플스테이를 즐기면 좋은 일정이다.

그래서 찾았다. 산청 대원사 템플스테이를! (예약으로 꽉 차있는 자리를 운좋게 전날 예약할 수 있었다)




산청 대원사를 소개합니다.

대원사 정면.jpg

산청 대원사는 지리산 산 속에 있는 절이다. 지리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대원사는 150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졌다가 임진왜란과 여순사건을 겪으며 두 번이나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지금의 모습은 1955년 법일스님이 다시 세우신 것이다. 특별한 건 이곳이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라는 점이다.(실제로 절엔 남자 스님은 찾아 볼 수 없다) 사찰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6.6미터 높이의 멋진 석탑이 있는데, 부처님의 사리도 모셔져 있다고 한다.


자연.jpg 체크인 전에 둘어본 산책길

대원사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수행이다. 지리산 초입부터 웅장한 산세에 압도당하며, 푸르지 않는 겨울 산인데도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절 앞 2킬로미터애 다다르는 계곡길은 마치 자연이 빚어낸 작품과도 같다. 맑은 물이 바위 틈 사이로 흐르고, 길가에는 웅장한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얼은 계곡 사이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산행을 하며 나는 힘든 내 숨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져 잠시동안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게 하는 말 그대로의 '자연'을 만났다.




대원사 템플 스테이 일정은 이러하다.

휴식형 스케줄.jpg

내가 선택한 휴식형은 오후 2시 40분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사찰 곳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이후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스님과의 차담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불교의 가르침까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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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풍경1.jpg
절풍경2.jpg
OT가 끝난 후 살펴본 대원사


스님과의 대화에서는 평소 궁금했던 내용이나, 자신의 고민거리 등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해주는 방식.
불교가 처음인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른 건가요? 아니면 어떤 하나의 깨달음을 모두가 추구하는 건가요?"
스님은 내 질문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개개인의 과정은 다르지만, 깨달음은 같다"고 답하셨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본인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들려주셨다.


저녁에는 스님들과 함께 공양을 하고 예불을 드린다. 절에는 처음 방문해본지라 예불엔 참석해보고 싶었다. 첫 경험을 요약하자면 '절을 이렇게 많이나 한다고?'다. 실제로 다음날 허벅지에 알이베기더라.


예불이 끝나면 자유시간이다. 겨울 산사의 밤하늘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이 보였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 때문에 오래 보지 못해 아쉽다. 대신 방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달빛에 물든 산자락의 모습에서 겨울 산사만의 고요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밤 하늘.jpg




대원사의 공양은 맛있다.

나는 꽤나 이상적인 장면을 그렸다. 넓은 법당 안에서 방석을 깔고 앉아, 스님이 하나의 접시에 알맞게 음식을 덜어주시고, 어쩌면 발우공양까지... 하지만 이건 내 과도한 상상이었다.

실제 공양은 의외로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었다. 깔끔한 식당에서 뷔페 형식으로 준비된 음식을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담아 먹으면 된다. 다만 한 가지 규칙이 있다면 '남기지 않기'.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사용한 접시와 수저는 직접 설거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하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

첫 공양.jpg
세 번째 공양.jpg
두 번째 공양.jpg
평소 나물류 반찬을 잘 드신다면, 가보시길 추천한다. 엄청 맛있다.


수행 중인 스님들도 한 공간에서 공양을 하시기 때문에 공양을 하다 스님들도 만날 수 있다. 부족하면 더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직접 캔 이름모를 나물도 경험 할 수 있으니(배식을 할 때 나물 소개를 해주셨는데 까먹었다...) 채소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좋아한다. 100% 장담한다!





여행객이 머물기 좋은 방

하루를 머무는 데에 8만원이라면,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비싸지만 고급 호텔에 비하면 싸다. 개인적으로 고급 호텔의 편의성에는 못 미치지만 깔끔함과 정갈함, 그리고 주변 자연이 주는 건강함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한다.

방 사진.jpg
화장실 사진.jpg
왼쪽 방 오른쪽 화장실

한 방에 4명까지 머무를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는 절대 한 방에서 지낼 수 없으며 동행하는 사람들끼리는 한 방에서 지낼 수 있다. 지리산 약수가 모든 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 마시면된다. 그리고 간단한 설겆이를 할 수 있도록 세제가 마련되어있다.


다도 구비.jpg 여러가지 차가 준비되어 있다.

방 한켠엔 차를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차가 준비되어 있는데, 자기가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해야 한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템플스테이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마무리하며

푹자고나니 눈이 쌓여 있었다. 절에서 쌓인 눈을 보다니, 이런 타이밍도 있나 싶다. 방에서 나와 보니 절 마당이 하얀색으로 변해있었고, 여기저기 스님들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아침 풍경.jpg


다른 숙박객들이 눈 사람을 만들고 있어, 나도 만들었다. 땀 뻘뻘 흘리면서.

눈 사람.jpg 머리가 너무 커 얼마 못가 쓰러졌다.

군대 전역한지 12년 정도 지났는데, 군생활 이후로 처음으로 눈도 쓸었다.


사실 템플스테이는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왔다. 절이 궁금했고, 조용히 쉬고 싶었달까. 뭔가 특별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닌데, 의외로 참 좋았다. 허벅지는 좀 아프지만, 산나물도 실컷 먹었고, 따뜻한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보냈다.



계획 없는 여행 중에 유일하게 계획했던 템플스테이. 생각보다 훨씬 편하게 쉬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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