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악동이 되었는가(6)

6화.소음 #인지적왜곡 #신경증 #프리다칼로

by 오독오독

학교에서 지원의 집은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학교 정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가면 그림아파트로 쪽문. 쪽문 계단으로 내려가 108동, 107동 사이를 지나가면 105동. 벌써 지원의 집이다. 1203호 우편함에 아직 우편물이 남아있다. 지원은 우편물을 꺼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가고 있다. 12층에 멈춘다. 엄마가 타고 내려올지도 모른다. 지원은 몸을 돌려 2층으로 걸어 올라간다. 2층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시 누른다. 마주치고 싶지 않다.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6학년 때부터였던 거 같다. 그전에도 그랬을 수 있겠지만 지원이 눈치챈 것은 그때였다. 엄마는 지원이 집에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손잡이를 돌린 채 안방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면 조심히 손잡이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엄마가 안 좋은 일이 있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빈번하게. 그리고 이제는 매일이 되었다. 엄마의 발소리는 "말 걸지 마, 네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상담선생님은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네가 해석한 비합리적인 생각이라고. 그 말대로 자신의 왜곡된 생각을 고쳐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원은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소리에 민감했다.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 소리 없이 보셨다. 아파트 방송 스피커는 박스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조용한 저녁. 작은 소리에도 진동하는 공기. 지원은 어색함을 깨기 위해 말을 꺼냈다.

― 오늘 영이랑 슬러시 먹는데 빨대 꺼내다가 튄 거야. 그래서 지나가던 남자애 안경에 묻었어. 웃긴데 사과는 해야겠고 막...

― ... 그 얘기 계속해야겠니? 별 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유난을 떨어.

엄마가 집을 나가버렸다.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굳이 슬러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대가가 너무 컸다. 지원은 방에서 엄마가 언제 들어오나만 생각 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앞으로 절대 아무 얘기도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왜 그랬을까. 지원은 그 다짐은 가끔 잊고 엄마한테 말을 걸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다. 집에 오니 엄마가 없었다. 약국에 늦게까지 계신 건가. 엄마는 저녁 9시에 들어왔다.

― 초밥 사 왔어.

무슨 일이 있었나. 지원은 엄마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 엄마, 늦었네? 오늘 과학 시험 망했어. 고쳤는데 틀렸어. 그냥 낼 걸.

― 지겨워. 안 그래도 난리 칠 거 같아 일부러 나가 있었는데.

엄마는 저녁을 먹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두 번도 아닌 일. 너무나 당연해 예상이 가능함에도 상처를 받는 자신이 지원은 이해가 안 되었다. 엄마한테 또 말을 건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지원. 도어록을 누르고 신발을 확인한다. 엄마 신발이 있다. 안방문 닫히는 소리가 난다. 지원은 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갈아입고 미술학원에 갈 준비를 한다. 바로 나가려다 안방문을 두드린다. 아린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안 올 거 같지만 말은 해둬야 할 거 같다. 초인종 소리가 나면 또 기분 나빠할 테니까.

― 응? 왜?

― 엄마, 오늘 저녁에 아린이가 놀러 올지도 몰라. 17층 사는 애.

― 밖에서 만나지 그래.

― 집으로 온다고 해서 잠깐 내 방에만 있다가 바로 나갈게.

― ...


1203호에서 나온 지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105동 현관에서 나와 아파트 정문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다 귀찮다. 아린이 진짜 올지 궁금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그냥 모든 게 다 끝난 상태였으면 좋겠다. 버스가 온다. 지원은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검지 손톱으로 엄지손가락을 꽉 누른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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