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망친 그림 #입시미술 #불안 #소음
지원이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공부로는 좋은 대학에 못 갈 거 같아서.
― 미술이라도 할래?
그림을 잘 그리는 편도 아니었는데 엄마의 권유로 시작한 미술은 꽤 오래 지원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매일 그리니 좀 늘기는 늘었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들과는 달랐다. 그저 배운 방법대로 그림을 끝내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흥미가 없었기에 사물을 관찰하지도 도구를 실험하지도 않았다.
― 지원아, 좀 재밌게 그려봐.
강사선생님께서 말하는 그 재미가 뭔지 지원은 모르겠다. 그저 시간을 때울 뿐이다. 뭐라도 열심히 하는 척.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이곳이라면 엄마 눈에 거슬리지 않게 4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채화가 계속 탁해진다. 묘사는 안 하고 계속 덧칠만 하니 종이는 일어나고 물감도 더 이상 안 쌓인다. 그만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아무 말 없으시다. 일어나서 멀리서 그림을 살펴보는 척하다 다시 앉아 또 똑같은 터치로 배경을 칠한다. 집에 갈 시간이다. 오늘도 열심히 그리는 척 흉내 내러 미술학원에 다녀왔다. 한 달 학원비 30만 원 참 사치스럽다.
시외버스비 900원 찍고 돌아오니 날씨가 흐려서인지 벌써 아파트 현관에 불이 켜져 있다.
― 야, 신지원!
― 아.
― 뭐 하냐?
유아린이다. 교복 입은 걸 보니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갔다 온 듯하다.
― 너 혹시 오늘 우리 집 갔었어?
― 아니? 왜?
― 아, 아냐.
아린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다니 우습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기도하다.
―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냐?
― 현관키를 안 가지고 와서.
― 인터폰 하면 되잖아. 집에 아무도 없어?
―...
벨소리가 울리면 엄마는 신경질을 낼 거다. 방문 닫는 소리,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 냉장고 여는 소리, 샤워기 소리, 물 끓는 소리 모든 소리는 엄마를 자극한다.
"요란스러워. 아주 난리를 치네."
"그렇게 뭐라고 하면 난 아무것도 못해."
"아무것도 하지 마."
남들에게는 일상, 지원에게는 금기. 그런 일로 비난을 듣느니 추워도 버티는 게 낫다.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집은 조용히 무사할 것이다.
― 아무도 없으면 너희 집 가자.
― 아니, 엄마 계셔.
― 그럼 인터폰 해. 나 놀러 가도 되는지 여쭤본다. 1203호지?
― 뭐 하는 거야!
지원은 키패드를 누르는 아린의 손을 급히 당기고 재빨리 취소 버튼을 누른다.
― 아, 왜?
― 짜증 나.
지원이 다시 취소버튼을 누른다.
― 내가? 너 미쳤냐?
― 짜증 나. 왜 나한테 난리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지원은 계속 취소 버튼을 누른다. 누르고 또 누른다. 손이 엇나가기도 손톱이 부딪히기도 한다.
― 너 뭐냐?
― 짜증 나. 짜증 나.
― 뭔데?
― 다 짜증 나.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손가락 끝이 저리다. 오후 내내 억눌렸던 감정이 밀려온다. 다 그만두고 싶다. 망친 수채화처럼 더 그릴 수도, 고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