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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수연구소 Apr 10. 2016

악기 100개 모으기

삶에서 악기를 배우는 것 만큼 안필수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인생의 목표가 뭐에요? 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악기 100개 모으는 거요"

오랜 기간 숫자와 구조화에 트레이닝 받은 결과, KPI는 측정가능한 숫자로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일 수도 있으나, 사실 '착한 사람이 될래요', '부자가 될래요' 같은 뜬 구름 잡는 내용보다는 뭔가 있어 보일까 하여 준비해논 대답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급조한 대답은 아니다. 이는 아주 오랜기간 동안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한 결과 가장 타당한 측정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세워진 치밀한 전략인 것이다. 악기 100 프로젝트 뒤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세부 목표들이 숨어있다.


먼저, 악기를 100개 모으려면 일 년에 두 개의 악기를 모아도 50년이 걸린다.  일단,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50년은 앞으로 더 살아야 한다. 아주 명확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오래 살아야지'. 그리고 단순히 그냥 생명연장으로는 힘들다 악기를 배우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채로 오래 살아야 한다. 이는 '난 아주 튼튼하게 오래 살테야' 와 같은 뻔뻔한 말을 그럴 듯 하게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악기라는게 어찌보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한 일이라, 악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 외에 경제적으로 투자를 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밥벌이는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자식들이 옷이 없는데 와이프가 악기를 사도록 허락할리 만무하다. 게다가 악기라는게 싼놈도 있지만, 그럴 듯한 악기들은 모두 비싸다. 즉,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돈을 50년동안 벌어야 한다니..


마지막으로 약을 팔자면, 경제적인 안정뿐 아니라, 새로운 악기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한 번이라도 배우려면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고자 하는 에너지가 자그마치 50년 동안 꾸준히 필요할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하고 싶다. 이건 정말이다. 일에 지치고, 먹고 사는데 지치는데, 아무리 돈이 있어도 새로운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을까? 항상 나의 목표를 잃지 않고, 내가 나의 삶을 끌어나가는데 있어서 끌려다니지 않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목표이다.


솔직히, 먹고 사는 일에 치여서 쉽게 이 목표를 잊고살기도 한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두번 돌아보면서 '아~ 나의 삶의 목표는 악기 100개였지' 라도 잃어버렸던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아주 소중한 목표이다.


이 목표는 이미 한 10년전부터 설정되어 (지연되고 있긴 하지만) 꾸준히 진행중이다. 누가 간혹 '몇 개나 모았어요?' 물어보기도 해서 이번에 한번 천천히 정리해보면


기타(4대)

하모니카(2개)

키보드

바이올린

인도현악기

아코디언 (2개 - 결혼을 통한 M&A로 자산 병합)

칼림바

틴휘슬

뮤지컬 쏘 (연주용 톱)

우쿠랠래

따부카 (거의 망가졌지만)


한 15개 정도 되는구나.


혹자는 그걸 다 배워요? 라고 묻기도 한다. 사실, 그냥 사두고 한 두번 띵띵거리다 걸어둔 것도 많다.


그럴 때면,

"풍류라는 것이, 꼭 내가 연주할 필요가 있나? 끊어진 가얏고 걸어두면 바람이 와서 연주해주겠지, 그것이 풍류 아니던가?" 라고 약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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