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ulturHeft

<숨; EXHALATION>

믿고 보는 테드 창

by soripza


그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소설을 구축하는 촘촘한 세계관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속에서 다루는 주제의 과학적인(혹은 비스무리한 것으로 설명되는) 해설 그리고 마지막은 그것들을 조화시켜 그의 세계관 안에 놓인 인간이 느끼는 깊은 감정과 변화된 사회의 모습에서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방대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첫 번째 소설집 <네 인생의 이야기; The Story of your life>에서도 마찬가지고,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숨; Exhalation>에서도 찾을 수 있다.


보통 SF소설이라고 하면 진보된 과학기술이나 우주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테드 창의 소설은 또 다른 형식을 그러니까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숨>의 첫 번째 작품인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는 중세-근세의 아랍에서 타임머신과 텔레포트가 가능한 어떤 고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꼭 SF의 배경이 현재나 미래에 속박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는 좋은 예시이다.


위 작품은 타임머신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인과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네 인생의 이야기>와도 결이 닿아있는 멋진 작품이다.

다섯 번째 소설인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역시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보모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의 배경 역시 현대가 아닌 19세기 영국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사람의 기억이 모두 녹음되어-마치 Vlog처럼-더 이상 기억이 아닌 ‘사실’로만 이루어졌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서술한다. 아직 자신의 기억을 ‘기억’하는 세대와 모든 인생의 순간이 녹음되어 그것을 다시 ‘되짚는’ 세대의 갈등과 그 사회상에 대해 묘사한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다중우주 내지는 분기점에 얽힌 이야기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을 때 이 세계에서는 동승자가 죽고, 저 너머 세계에서는 운전자가 죽었다면? 그리고 어떤 장치를 통해 그 세계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위의 두 소설은 주인공을 앞에 둠과 동시에 주인공을 둘러싼 사회상에 대한 논의도 심도 있게 다룬다. 예전에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SF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말했던 SF란 만약 중세시대에 자동차가 나오는 소설을 썼을 때, 주인공이 자동차를 가지고 공주를 구한다면 그것은 SF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SF는 ‘중세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꾸준히 그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그의 소설에 지금과 반대의 상황에 놓인 세계관이 등장하기도 한다. <옴팔로스>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현대의 사람들이 ‘천동설’과 ‘지구 창조설’을 기본적으로 믿고 있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믿고 있던 것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갈 때, 그리고 그 배경이 현재의 우리들과 동일한 삶의 양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닥친다면 어떻게 될는지.


작품 외적으로 한 가지 아주 작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숨>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중편 소설이 실렸다는 것이었다. 사이버 세계에 있는 A.I. 애완동물들과 그들을 기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그린 이 작품 역시 수작이지만, 이미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해당 작품이 <숨> 전체 분량의 1/4 내지 1/5를 차지를 하기에, 단행본을 이미 구입한 나로서는 책을 구매가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뭐 어떤가. <숨>은 <네 인생의 이야기> 이후 17년 만에 나온 소설집이고, 테드 창 역시 다작을 하다기 보단 몇 년에 걸쳐서 단편 또는 중편 소설을 쓰는 작가다. <숨>에 수록된 9편의 소설이 17년의 세월 동안 그가 쓴 소설의 전부이기도 하니까.


사실 <숨>의 리뷰를 쓰기엔 너무 늦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예약 구매로 몇 개월 전에 샀지만 11월 초에 돼서야 읽었다. 사무실에 책을 두었지만 집중해서 읽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점심시간에 책이 잘 잡히지 않았기도 했다. 그렇게 방치되다가 휴가지에 가서 넓은 바다를 앞에 두고 천천히 읽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휴가철에 휴양지에 가서 썬배드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 소망 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이뤄서 기뻤고, 그때 읽은 책이 이것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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