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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02. 2020

<테넷, TENET 2020>

과 놀란이 이룬 시간에 대한 놀라운 성취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테넷>을 보고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 중이었고, 나는 수요일까지 연차를 낸 상태였다. 11시 IMAX관을 예매했고, 해당 시간에 극장에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 남짓이었다. 영화는 훌륭했다. 맨 처음 <인셉션>에서 조셉 고든 래빗의 움직이는 호텔방에서의 액션, 디카프리오가 거리를 걸을 때 온 도시가 거꾸로 올라오는 장면을 보고 느꼈던 새로움과 벅참을 이번 <테넷>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놀란)가 배트맨 시리즈를 제외한 그의 장편영화에서 줄기차게 소재로 쓰여온 소재는 ‘시간’이었고, <테넷>은 이전의 영화 3편 (인셉션/인터스텔라/덩케르크)와는 또 다른 시간의 사용법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개봉 10년째를 맞은 <인셉션, 2010>에서 그는 ‘현실에서 꿈으로 이동했을 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라는 소재를 삼았다. (정확히는 꿈의 단계마다 시간이 느려진다) 이는 실제가 아니며,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거의 모든 것이 ‘상상’ 속의 일이다. ‘킥’이나 ‘림보’와 같은 재미있는 설정들이 추가되고 그 위에 주인공 ‘코프’에 대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인터스텔라, 2014>에서는 실제 물리 이론 중의 하나인 상대성 이론을 활용하여 ‘나’의 시간과 ‘상대’의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시간 지연’을 사용했다. 이는 <인셉션>의 꿈과는 달리 우주의 법칙으로 인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블랙홀 가까이 갔던 주인공 ‘쿠퍼’가 자신의 딸인 ‘머피’보다 나이가 적어진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덩케르크, 2017>에서는 1차 세계대전 중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덩케르크 작전’을 무대로 3가지의 각각 다른 장소와 시간대를 적용(덩케르크 해역의 군인들 : 1주일 / 영국에서 군인들을 구하기 위한 선박 : 1일 / 덩케르크로 지원을 가는 공군 : 1시간)한 뒤 그것들을 세밀하게 편집하여 하나로 묶는 것에 성공한다.


그래서 각 영화를 ‘시간’이라는 소재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셉션> : 꿈의 세계(상상)에서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의 시간과 엮는다.
<인터스텔라> : 특수한 상황(현실)에서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리고 이것을 지구(또 다른 현실)의 시간과 엮는다.
<덩케르크> : 현실에서 흘러가는 세 가지 상황(1주일/1일/1시간)이 있다. 이것들은 어느 순간 겹친다.



다시 <테넷>으로 돌아오자. 이전까지의 영화가 현실세계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였다면, <테넷>은 그것을 뒤집는다. 바로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인버젼’ 개념) 적어도 현재까지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기본적인 열역학 법칙 중의 하나이고, 시간의 방향도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시간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순행’ 방향으로만 흐른다.


<테넷>에서는 미래 기술의 발전으로 이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됐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어떤 ‘회전문’을 지나는 것으로 그것이 발현되는데, ‘인버젼’된 물체와 사람들은 순행 세계의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거꾸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이렇게 회전문을 지나 역행하는 사람에겐 순행 세계의 사람들이 ‘거꾸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놀란은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새로운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서사와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놀란이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소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극 중에서도 관객과 마찬가지로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에게 그냥 ‘느껴라’ 고만 말한다. 그래서 ‘인버젼’된 세상의 기본적인 규칙과 행동들 만을 알려줄 뿐, 그 이상으로 관객에게 현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인셉션에서 시간 지연을 꽤 길게 설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몇몇 장면의 서사적 흐름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고, 아마도 짧은 시일 내에 두 번째 관람을 할 것 같다.



그러나 놀란이 이룬 놀라운 성과는 이렇듯 ‘이야기’를 ‘영상’으로 바꾸는 것에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현실감을 위해 VFX(시각적 특수효과)를 적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폭파 장면과 액션 장면은 실제로 촬영됐으며, VFX가 사용된 장면은 280컷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반적 SF영화가 1000컷 이상 사용된다고 함)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특수효과보다 편집에 더 큰 공을 들였을 것이다. 같은 장면에 순행과 역행 장면을 모두 담아야 했을 테니, 연기하는 배우는 물론 촬영 감독까지 골머리를 썩었을 것이다.


그러나 <테넷>도 이전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이 ‘합일’된다는 점. <인셉션>에서는 각 등장인물이 최종적인 ‘킥’에 의해 각 꿈에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모두 현실로 돌아온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를 떠난 아버지가 블랙홀을 지나 다시 딸에게 돌아오고, <덩케르크>에서는 덩케르크 해변의 병사와 영국 어선의 사람 그리고 영국 공군이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가 만난다. <테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 역행을 소재로 썼던 만큼,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서사가 합일되며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있다. 그만큼 놀란이 각본을 얼마나 치밀하게 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그가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그리고 <덩케르크>를 찍으면서 ‘시간’을 소재로 연출한 영화는 트릴로지처럼 완결 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넷>이 나오면서 그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만약 <테넷>이 현실의 법칙을 뒤튼 새로운 ‘시간 트릴로지’의 1편이라면, 나는 아직 나오지 않은 두 편의 영화가 너무나 기대된다. 그가 또 어떤 신박하고 환상적인 소재로 각본을 구상했을지, 그것을 또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할지. 우선은 <테넷>을 한 번 더 보러 가야겠다. 물론,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마스크를 꼭 끼고 말이다. END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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