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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07. 2021

<미나리, MINARI 2021>

쓸모없음의 무쓸모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다분히 한국에서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겠지만, 영화가 시작되며 브래드 피트의 영화사 ‘Plan B’의 로고가 비치고 영어로 MINARI가 스크린에 뜨는 순간 나는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꼈다. 개봉 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정보와, 문명 특급에 윤여정 배우가 나오면서 알게 된 <미나리>는 가뭄과도 같은 영화시장에서 나에게는 <소울> 이후 다시 극장으로 발을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었다. 허름하고 긴 집과 그 집을 둘러싼 황량하고도 푸른 녹지 만이 거의 영화 장면의 전부였지만, 그 속에는 80년대 이민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쓸모 있음의 무쓸모”라고 정의할 것이다.


영화는 한국 가족이 미국의 한 시골 마을로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부인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가 있고, 그들에겐 두 어린아이 앤(노엘 조)와 데이빗(앨런 김)가 있다. 이 중 막내아들인 데이빗은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그 부부는 연신 “뛰지 마, 데이빗”이라고 말하며 아들을 진정시킨다. 시골에 이사 온 부부는 병아리 부화장으로 일을 나가는데, 제이콥은 능력 있는 병아리 감별사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는데, 바로 가든-혹은 농장-을 일구는 것이다. 병아리 감별사로서 재능이 있지만, 그는 매년 재미교포의 수가 3만 명씩 늘어난다는 점을 근거로 미국에서 배추나 고추, 가지 같은 한국의 작물을 키우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가족들과 살아가는 것을 꿈꾼다. 그래서 큰 도시를 떠나 흙이 좋은 이 소도시가 있는 ‘아칸소 주州’로 이주한 것이다.



그러나 모니카는 이에 부정적이다. 아들의 심장병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이나 걸리고, 토네이도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집에 이사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선은 남편의 선택을 함께하며 같이 부화장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부부는 각자의 삶에 대한 태도로 대립하고 싸우다가 결국 한국 본토에 있는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와 같이 살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 영화는 이 다섯 사람의 한국 가정 구성원과 제이콥의 농사를 도와주는 한국참전용사 출신 폴, 그리고 소도시의 부화장직원 몇몇과 이웃과의 관계를 보여주며 진행된다. 내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집은 ‘쓸모’는 영화 초반, 부화장에서 병아리 감별을 남들보다 빨리 마치고 나온 제이콥이 데이빗과 공장 바깥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나온다. 데이빗은 부화장 공장의 검은 연기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이라고 묻고, 제이콥은 그것이 쓸모없는 수컷 병아리를 폐기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이후 제이콥의 행동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다분히 비과학적으로 수맥을 찾는 미국인들을 비웃으며 ‘사람은 똑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지형을 통해 농사에 쓸 지하수를 찾는 장면이나, 어떻게든 자신이 키운 작물을 납품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 그리고 아내가 전원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같이 가자는 말에도 자신은 끝까진 남아 성공하고 싶다고, 아이들도 아버지가 뭐라도 성공하는 모습을 봐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는 그를 보면서 자신에 대한 ‘쓸모 있음에 대한 증명’을 위해 불사르는 제이콥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쓸모’라는 것은 제이콥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모니카 역시 다른 지점에서 이 ‘쓸모’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측면이 아닌, ‘같이'를 위한 가치를 위해 행동한다. 이전 도시에서는 다른 일을 했는지, 그녀는 남편과 달리 병아리 감별을 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가족의 생계에 보탬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부화장에서 병아리를 집으로 가지고 와 틈나면 감별 연습을 한다. 제이콥이 뒤에서 ‘그래도 실력이 그렇게 늘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가족들을 위해 꿋꿋이 노력하고, 결국 영화 종반부에 다다르면 제이콥보다 먼저 감별을 마친다.


또한 그녀는 ‘가족의 쓸모’가 가장 먼저인 사람이다. 아들과 자신의 엄마를 위해 도시로 이사할 구상을 하면서도 그녀는 끝까지 제이콥에게 ‘당신이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러나 끝끝내 제이콥이 ‘자신은 여기 남아 목적을 이루겠다. 아이들과 도시로 가고 싶으면 먼저 가라.’라는 말을 듣고, 결국 그에게 ‘나는 더 이상 못 참겠고, 우리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하며 그녀에게 이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쓸모’에 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들 데이빗과 할머니 순자다. 데이빗의 심장은 심장으로서의 ‘쓸모’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창 뛰어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지 못한다. 한편, 처음 만난 할머니와 지내면서 ‘할머니 싫어’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라며 할머니의 ‘쓸모’를 부정한다. 극 중 윤여정이 맡은 할머니 순자는 아이들을 봐주는 이유로 미국으로 왔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할머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음식도 잘 못하고, 아이를 잘 봐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둘은 시종일관 부딪친다.


순자가 가져온 한약재로 만든 쓴 한약을 거부(쓸모없다고 여기는)하는 데이빗은 할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 한약을 변기에 버리고, 거기에 오줌을 싸서 할머니를 골탕 먹인다. 오줌이 인간의 몸속에서 나온 ‘쓸모’ 없는 노폐물임을 생각하면 재밌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아직 어린 데이빗은 자다가 오줌을 싸곤 하는데 할머니는 그런 데이빗에게 ‘딩동(성기를 부르는 은어)’가 고장 났다고 말한다. 이 역시 성기의 ‘쓸모’에 대해 말하는 장면인 것을 생각하면, 데이빗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의 ‘무쓸모’한 생식기관에서 나온 ‘무쓸모’한 액체로 할머니에게 멋진 복수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가족인지 데이빗과 할머니는 점점 가까워진다. 할머니는 제이콥을 데리고 집 근처 하천으로 가 그곳에 미나리를 심는다고 말한다. 이런 환경이 미나리를 키우기 가장 좋다며, 미나리는 무심하게 씨앗을 뿌려도 알아서 잘 자란다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에 좋고 약재로도 쓰인다고 말한다. ‘미나리 이즈 원더풀!’ 데이빗도 신이 났는지 미나리를 가사로 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곧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모니카는 아들의 심장병이 나았으면 하는 마음과 간밤에 아들이 오줌을 싸기 않기 위한 의미로, 잠들기 전 데이빗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꿈을 꾸게 해 달라는 기도를 아들에게 시킨다. 이는 꽤 자주 있던 일처럼 보이는데, 데이빗이 할머니와 한 방을 쓰고 난 뒤 할머니에게 그 행동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자는 데이빗에게 자신 옆으로 오라고 말하며, 손자를 꼭 안아주며 괜찮을 거라고, 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엄마 아빠가 출근을 한 사이 데이빗이 일어나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누나인 앤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할머니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관객 역시 어제까지 정정하던 순자가 갑자기 이상해짐을 느낀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정확한 병명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뇌졸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한쪽 팔과 다리를 절고, 말을 어눌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할머니 자신에 대한 ‘쓸모’가 없어지는 장면이어서 그렇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말이 어눌해지니, 가장 슬픈 건 역시 당사자일 것이다. 이 전에는 집안일을 거들고 아이들도 봐줄 수 있었지만 발병 이후에는 집안일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딸이 ‘엄마 굳이 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고, 손녀 손자를 돌보는 일도 누나인 ‘앤’이 동생 ‘데이빗’을 돌보는 것으로 대체된다.


두 번째 포인트는, '쓸모'와 연관된 서사적인 이유다. 그 밤 이후 데이빗은 밤에 오줌을 싸는 행위를 멈췄고, 며칠 후 병원에서 심장검사를 받았을 때도 ‘기적적’으로 심장이 좋아졌다는 진단을 받는다. 데이빗의 신체에서 쓸모가 없었다고 여겨졌던 생식기와 심장이 ‘쓸모’를 찾음과 동시에 할머니의 수족과 뇌가 ‘쓸모’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처음에 데이빗이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에 의해 자신의 ‘무쓸모’가 치유되고, 그 대가로 할머니의 ‘쓸모’가 없어지니까. 그리고 데이빗의 심장이 좋아졌다는 진단을 받는 순간, 집에 혼자 있었던 할머니가 쓰레기를 태우다가 사위가 키운 농작물이 있는 창고에 까지 불이 붙는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은 앞서 말했던 제이콥-모니카의 싸움과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시퀀스에서는 등장인물 중 4명의 ‘쓸모’와 연관된 일들이 서로 얽히는 것이다.



낮에만 해도 이별을 하자고 했던 부부는 창고가 눈앞에서 불타고 있는 이때만큼은 서로 힘을 합해 작물을 옮기지만 결국 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를 부둥켜 앉은 채 창고가 재로 변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또한, 자신 때문에 이 비극이 일어난 것을 아는 순자는 정신을 잃은 채 하염없이 길을 걸어간다.


만약, 영화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결국 ‘무쓸모’가 빚어낸 비극이 한 가정을 몰락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었겠지만 여기에서 데이빗이 그런 결말에 종말을 고한다. 저 앞에 정신없이 걸어가는 할머니를 부르며 드디어, 자신의 좋아진 심장을 가지고 뛰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서며, ‘할머니 가지 말아요. 우리 같이 살아요. 집으로 가는 길은 저쪽이에요.’라고 말한다. 두 남매는 할머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서서 밤길을 같이 걸어간다.


다음 장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시점의 밝은 날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사는 하지 않았다. 미국인이 나뭇가지로 찾아낸 수맥 위에 큰 바위로 표시를 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 제이콥과 데이빗이 하천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 씨앗은 하천 옆을 빼곡히 채웠다. ‘할머니가 정말 좋은 자리를 찾으셨구나.’ 데이빗은 이렇게 말하고 미나리를 따며 영화가 끝난다.



<미나리>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쓸모’가 없어지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사람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쓸모’ 있는 부분과 ‘쓸모없는’ 부분이 있고, 그것 때문에 갈등과 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을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 한국을 건너와 미국의 낯선 땅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가 결국 갖은 난관을 겪었지만 뿌리를 내렸던 80년대 재미교포의 삶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외 point

-.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폴'은 일요일 예수의 고행을 따라 하듯 십자가를 지고 하루 종일 걷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샤머니즘인 엑소시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국 작물을 키우는 것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나오는데, 이는 어쩌면 미국과 한국의 성질을 섞은 상태를 비유하는 것 같았다.

-.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던 도중, 감독의 출생지가 영화에서 나오는 '아칸소주'와 동일한 것을 알았다. 감독인 정이삭 역시 재미교포인 점을 생각한다면 영화에 녹아든 세계는 감독 본인의 삶을 투영한 것도 있을 것이다.

-. 배우 윤여정은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요리실력을 뽐내지만, <미나리>에서는 요리를 잘 못하는 할머니로 나온다. 그래도 작 중 요리 실력과는 별개로 딸을 위해 온갖 조미료를 가지고 오는 장면이 나온다.

-. 스티븐 연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 나왔었는데,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영화 종반 부 스티븐 연이 연기한 제이콥이 불에 타는 자신의 작물 창고를 보고 있는 것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 순자가 가져온 고스톱에서 맨 위 장에는 8피가 있다. 화투는 숫자별로 4장이 있다는 점에서, 순자를 제외한 미국에 살고 있는 4명의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았다. 또한 고스톱에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같은 숫자의 두장을 겹쳐야 한다는 점에서 '같이'의 가치를, 한편으로는 낱장은 '쓸모'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END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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