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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2. 2021

<아임 유어 맨, I'm Your Man 2021>

인간은 인간만(Mann)을 사랑할 수 있는지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니 핑크> 이후 오랜만에 마리아 슈라더의 영화가 찾아왔다. 20년 도 더 전에 나온 그녀의 영화에서는 30살이 된 여자가 자신의 연애 인생이 끝난 것 같다 자조하며 운명적 사랑을 찾기 위한 이야기가 전개됐다. 

이번 <I am your man>에서는 결혼 적령기가 지난 한 고고학자 여성이 배우자를 대체하는 안드로이드 로봇과 3주간의 동거를 통해 인간과 로봇 간의 애정관계도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을 내놓는다. 나로서는 오랜만에 개봉한 독일 영화가 반가웠다. 주연으로 나온 마렌 에거트는 일전에 (딱 20년 전) 영화 <Das Experiment>에서 모리츠 블라입트로이의 연인이자, 막판 상황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나왔는데, 훤칠하게 큰 키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본 그녀 역시 반가웠고, 올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은곰상 주연상은 그녀의 차지이기도 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했다.



- 동일한 소재를 사용한 <her>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을 터, <her>과 가장 다른 것은 ‘실체’가 있는 A.I. 와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물론 <her>에서도 사만다가 다른 여성의 몸을 빌어 사람과 교감을 한 적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육체만을 빌린 것뿐이었고, <I am your man>에서는 외형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는 휴머노이드 ‘톰’이 나온다. 

휴머노이드가 인간과는 구별이 불가능한 자신만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영화 <A.I.>과 유사하지만, 톰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임무가 사람의 실제 배우자로서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주인공 역사학자 ‘알마’는 처음에는 이 안드로이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작사에서 톰과의 첫 만남을 홀로그램이 설치된 어떤 파티 장소에서 주선하였을 때, 그녀는 톰에게 오직 기계이기 때문에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은 던지고, 그가 하는 달콤한 사랑의 말들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관객 입장에서도 톰의 멘트는 너무 과하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마와 톰 사이의 관계는 마치 인간 간의 연인 관계처럼 변해간다. 심지어 영화가 막바지로 가는 도중의 어떤 장면에서는 알마가 톰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인다.



- 그렇다면, 알마는 과연 안드로이드를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하고 찬성했을까? 분명 알마는 A.I. 와의 교감에서 행복을 느꼈고, 사람과의 관계와 다름없는 멋진 밤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아침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것을 톰에게 말하고 더 이상은 진행할 수 없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톰’을 안드로이드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안드로이드로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 이는 영화에서 제시된 인물의 다음과 같은 세 기준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1) 안드로이드의 관점 : 자신은 안드로이드(사실)지만, 인간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인공지능으로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임무 (사람의 배우자로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 또한 수행이 가능하다.


 2) 사람(알마)의 관점 1 : 사람은 사람이고,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가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와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존재 의의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3) 사람(다른 남자)의 관점 2 : 안드로이드가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배우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인간관의 관계는 어렵고,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를 찾을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해 남은 생을 외롭게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안드로이드가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면 흔쾌히 그 프로그램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 


- 2번의 경우,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배우자가 돼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이는 알마의 결론과도 같다. 그리고 나도 이 쪽이다. 안드로이드가 사람과 분간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을 파트너로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사람이 안드로이드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건강한 관계가 가능해질까? 예컨대 섹스의 목적으로만 사용되거나 (<A.I.>에서 주드 로가 맡았던 ‘섹스 로봇’) 청소나 식사 준비와 같은 가사노동의 대체만으로도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2번의 관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예컨대, 미래에 안드로이드가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계급 내지는 차별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번에 의거하여 사람과 안드로이드의 사랑을 막는 일이 생긴다면, 미래에는 이것이 현재의 다양성 문제와도 연장선 상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3번이 보다 유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3번 역시 언제까지나 안드로이드를 자신의 외로움을 대체해주는 사람을 대신해주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 영화 서사에서는 ‘대체’의 의미가 가장 강하게 깔려있다고 생각했다. 알마에게는 동료이자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있었고, 둘 사이에는 아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기는 유산된 것 같고, 그 때문에 둘은 헤어진 것 같았다. 현재 상황의 알마에게는 과거의 연인은 톰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이 하나 있고, 남자의 임신한 새 연인을 보면서는 자신이 저 여인으로 ‘대체’되었다는 생각을 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기 역시 새 연인의 태아로 대체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몹시 큰 우울함과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 고대 문자들의 의미 : 알마는 고대 언어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등)을 해석하고 논문을 쓰는 고고학자 캐릭터로 설정됐다. 언어는 고대에서 현재로 오면서 진화되고 변화되어 왔지만 그때 당시에도 현재처럼 시를 짓고 유희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을 향유했다는 뜻이다. 그리스 시대의 연극이 그랬듯이 현재에는 그것들이 영화나 드라마 내지는 다른 온라인 콘텐츠로 변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바도 명확해지는 것 같다. 인간이 향유했던/하는 것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다른 사람과 만나 관계를 이루는 것)이 과연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감독의 답은 그것이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 같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마는 톰과 환상적인 밤을 보냈고, 그를 떠나보낼 때 ‘너의 모든 알고리즘을 써서 나를 떠나가라’라고 말한다. 왜냐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붙잡을 것 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톰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은, 자신이 톰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연극을, 관객 하나 없이 오직 나만을 위한 연극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는 배우자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정리하고 보니 나도 보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사랑의 영역은 기계로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2021년이고, 향후 100년 200년 후에는 또 어떤 사회상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사람과 안드로이드가 자유롭게 연애하고, 더 이상 안드로이드가 사람의 ‘대체제’로 소비되지 않는 세상이 올 수도 있으니.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인간과 로봇이 서로 힘을 합쳐 다시 지구를 일궈가는 <Wall – E>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 영어 제목인 'I am your man'은 지나간 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도 생각하게 하지만.. 이것은 제쳐두고 영어 문장만 보면 '내가 너의 남자'다 라는 말로 생각되지만, 독일어 원제는 'Ich bin dein Mensch'이며, Mensch는 '남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뜻이다. 내 '사람'이라는 말도 역시 연인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좀 더 확실한 단어인 'Mann'을 썼지 않았을까. 결국 감독은 제목에서 좀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하려 했다는 생각이다. 결국 배우자뿐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영역의 '사람'으로서 안드로이드가 생각되어질 수 있는지.


- 산드라 휠러는 영화 초반 '톰'을 만든 안드로이드 회사의 직원으로 나오는데, 나중에 보면 그녀 역시 안드로이드였다. 처음에는 이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연애'가 아닌 다른 방면에서의 안드로이드의 인격은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품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잘 사용(?)되고 있는지 직접 집에 찾아와 확인하는 일을 안드로이드가 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지만, 이미 산업현장에서는 기계가 하는 일을 기계가 감지하여 오류를 알려준다. 다만 그것이 사람과 직접 대면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뿐.


마치며 한 줄 평 : 반가운 감독과 반가운 배우들이 만든 미래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 난 아직 사람이 좋다.

END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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