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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2. 2021

<유전,2017>과<그린 나이트, 2021>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놓아라. 참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전>과 <그린 나이트> 사이에는 4년의 개봉 시기가 차이나지만, 내가 영화를 실제로 접한 시기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미드 소마> 감독판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아리 애스터라는 감독의 세계에 발을 딛었고, <유전>역시 훌륭한 작품이라고 추천을 받았지만 왠지 공포영화에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저번에 왓챠에서 진행한 셀럽과 같이 수다(?)를 떨며 볼 수 있는 이벤트에 한예리 배우와 이은선 기자와 함께 <유전>을 보았고, 적지 않은 충격과 함께 한 동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계속 봤더랬다. 

<그린 나이트>는 포스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제작사 역시 A24인 것을 확인한 후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넓은 스크린을 통해 감상했다. 아서왕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서사가 제대로 머릿속에 없던 상태라,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후에 유튜브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해주는 해설 영상을 보고 대부분이 해결되었다. 


얼핏 봐서는 두 영화의 공통점이 무엇일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일주일 차이를 두고 영화를 감상한 나로서는 '참수'로 두 영화를 묶어보며 비교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과연 극 중에서 어떻게 참수가 이루어지고 사용되었을까? 차이를 간단히 알아보도록 해보자. 



#1 목을 내놓아라. 어떻게요?

<유전>의 서사는 주인공 애니의 엄마인 헬렌이 악마인 '파이몬'을 소환하는 서사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에서는 세 명의 머리가 필요했고, 그것이 각각 헬렌(할머니) / 애니(엄마) / 찰리(딸) 것으로 대응된다. 할머니 헬렌은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사후에 일어나도록 치밀하게 설계했고, 애니는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목적을 막아보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완성시키는 조수의 역할을 한다.

찰리는 억지로 간 파티에서 알레르기에 걸려 급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목을 내밀었다가 그대로 목이 잘리고, 애니는 앞서 말한 비극을 막다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목을 자른다. 헬렌은 (아마도) 사후 무덤에 묻히고 나서 다른 파이몬의 추종자들에 의해 목이 잘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헬렌의 계획은 성공하고, 애니의 다른 아들 '피터'의 몸에 파이몬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들어가고 추종자들의 만세로 영화가 끝난다. 



<그린 나이트>는 주인공인 '가웨인'의 영웅담으로 시작된다. 변변치 않은 사람인 그가, 원탁의 기사로서 당당한 일원이 되고 장차 왕 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 '모건 르 페이'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그린 나이트를 소환하고 그 녹색 기사는 연회가 한창인 원탁에 입성한다. 그리고 기사들을 보며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목을 내어주면서 작은 상처를 내던 참수를 하건, 1년 후에 똑같이 되갚아 주겠다는 것. 가웨인은 호기롭게 칼로 녹색 기사를 참수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을 들고 1년 후에 녹색 예배당에서 보자고 한 뒤 웃으며 사라진다.

그 뒤로 가웨인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떠밀려 예배당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기묘한 일들을 겪은 후에 도착한 예배당, 그는 녹색 기사 앞에 자신의 목을 내밀고 영화는 끝난다.



#2 어머니, 그 목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유전>은 특이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텍스트 안의 존재(애니)가 텍스트 밖의 존재(헬렌)와 싸우는 서사다. 영화는 헬렌의 부고면으로 시작되는데, 헬렌은 사진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그녀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전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니가 싸우는 대상이자 다른 가족들이 죽은 헬렌이 미리 짜 놓은 치밀한 계획에서 마치 자신의 결정을 하지 못하는 미니어처 인간처럼 힘 없이 끌려다닌다. 그러니까, 헬렌에게 있어 '참수'는 그녀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단계이고, 여기서 나온 목은 악마 소환 의식의 준비물이 된다. 헬렌에게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 



<그린 나이트>의 모건 드 페이는 <유전>의 헬렌과는 정 반대의 마음이다. 그녀는 가웨인에게 영웅이 될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 녹색 기사를 보냈고, 가웨인은 그를 참수한다. 이렇게 보면 그녀가 아들에게 '참수하는 것'을 선물로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녹색 기사가 말한 게임대로라면, 1년 후 가웨인도 녹색 기사에게 참수를 당해 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녀인 그녀가 이를 그대로 둘리 없다. 그녀의 계획은 (영화 상으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들을 죽일 수 없다. 그래서 가웨인이 여정을 떠날 때 녹색 허리띠를 만들어 그에게 준다. '이게 있으면 어떤 무엇도 너에게 해를 가할 수 없을 거야.' 



#3 나는 이렇게 할래요.


사실 <유전>에서 중요한 것은 '참수'그 자체가 아니라 '참수'가 포함된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3대에 걸친 가족의 비극을 모두 겪은 애니가 엄마의 거대한 계획에 어떻게 맞서고 있는지다. 1번에서 이미 말했지만, 애니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라는 존재인 동시에, 비극이 일어나게 도와주는 존재기도 하다. 

파티에 흥미가 없는 찰리에게 오빠랑 그냥 같이 가!라고 일갈하며 억지로 보낸 것이 애니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 역시 찰리의 참수에 관여한 인물이 된다. 

후에 아들과의 시퀀스에서는 이점 이 더 흥미롭게 드러나는데, 그녀는 아들을 낳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왜냐면, 남자에게만 들어갈 수 있는 파이몬의 특성상 어머니인 헬렌이 파이몬을 그녀의 아들(피터)에게 넣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한 세대 전에, 애니의 오빠는 '엄마가 자꾸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려고 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이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애니가 그토록 몽유병인 상태에서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피터에게 파이몬이 들어가지 않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 이게도, 이미 건너오지 못할 곳까지 진행된 의식에서 애니 역시 남편을 불태워 죽이고, 무언가의 빙의된 채로 두 칼로 자신의 목을 사정없이 찍으며 셀프 참수를 하며 세 개의 머리 중 하나를 파이몬에게 바치는 꼴이 된다. 



<그린 나이트>의 마지막 부분 녹색 기사에게 가웨인이 참수될 찰나, 가웨인은 도망을 간다. 왕국으로 돌아간 뒤엔 엄청나게 빠른 호흡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집에 돌아온 가웨인, 사랑하던 여인에게 아이만 뺏고, 다른 부유한 나라의 공주와 결혼한다. 그러다가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고, 왕국의 사람들에게 신임을 잃는다. 결국 적의 침입을 받고 성의 가장 안 쪽까지 들어왔을 때, 자신이 한 번도 풀지 않았던 허리띠를 푼다. 그 순간, 누가 목을 치지 않았는대도 가웨인의 목이 떨어진다. 그 순간 가웨인이 눈을 뜬다. 그는 다시 녹색 기사 앞에 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모두 가웨인의 상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허리띠를 푼다. 아마도, 영화 시간으로 장장 2시간이 넘는 여정 속에서 가웨인은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 목적을 위하여 표면적인 영웅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술수를 쓰지 않는 당당한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것인지.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후자를 택한 것 같다. 이내 녹색 기사는 '잘했다.'라는 칭찬을 건네고 영화가 끝난다. 과연 가웨인은 참수됐을까? 나는 '그렇다'라고 생각한다.


#4 결론은?



참수의 의미는 두 영화에서 각각 다르다. <유전>에서는 악마에게 바칠 머리를 얻기 위한 의식으로 사용되고, <그린 나이트>에서는 명예로운 죽음을 이르는 듯하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참수'의 이미지가 중요하게 쓰이고, 일을 꾸민 자(엄마)와 일을 행하는 자(딸/아들)의 행태가 다르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결국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의식으로서의 참수가 비극적으로 일어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한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녹색 기사의 게임에 응하며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한편, 두 영화 모두 기존의 서사와 방식을 깨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축했다는 점에도 비슷하다.

<유전>은 오컬트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그것을 현대식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에 성공함과 동시에, 서사적으로 비튼 (극의 중심이던 찰리가 중간에 죽고, 텍스트 밖의 헬렌과 싸우는) 점이 훌륭했고,

<그린 나이트>는 오래된 중세 전설의 내용을 비트는(원작 시에서는 가웨인은 녹색 기사에 세 상처만 나고, 오히려 기사도의 일인자로 추앙받는다.) 동시에 몽환적인 판타지를 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재밌었다. 

참수를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영화의 다른 점들을 미쳐 설명하지 못했지만, 이것을 제하고도 <유전>과 <그린 나이트>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깊이 고민해볼 만한 지점이 있는 영화들이었다. 나는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참수 따위는 하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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