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mKart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pza Dec 27. 2021

연말특집 : 차에 대하여2, Ein rotes Auto

<드라이브 마이카, 2021>와 <옐라, 2007>

엄마는 나에게 사진을 찍는 날이면 붉은색 옷을 입으라고 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갔을 때도 빨간색 옷을 챙겼고, 증명사진을 찍을 때도 빨간색 셔츠를 입곤 했다. 빨강은 눈에 잘 띈다. 강렬하다. 위험을 나타내거나 강조를 할 때 빨강을 쓰는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영화감독 중에서 가장 빨강을 잘 쓰는 사람은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일 것이다. 그의 모든 작품을 보진 못했지만, <하이힐>이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의 색감이 주는 강렬함은 잊을 수가 없고, 그 중심이 되는 색깔은 역시나 빨강이다.


다시 차(Car) 이야기로 돌아오면, 올해 내가 봤던 영화 중 빨간 차의 이미지가 선명한 것이 두 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앞선 글에서도 말했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카>이고, 두 번째는 올해 영화배급사 M&M이 마련한 크리스토프 펫졸드 영화 전에서 봤던 <옐라>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의 빨간 SAAB 900은 주인공 ‘가후쿠’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그 자신이기도 하다. 연극배우/연출가였던 그는 차를 운전하며 죽은 아내가 녹음한 연극 대본을 듣고 연습을 한다. 딴에는, 그가 연극제(祭)를 준비하며 미사키에게 핸들을 맡겼을 땐 그녀를 포함한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중요한 것에 다다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드라이브 마이카>의 차는 주인인 가후쿠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하다. 죽은 아내(과거)는 차 속에서 아직 살아있으면서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다른 이와 죽은 아내의 과거 일을 말하며 괴로워한다. 그(현재)는 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 히로시마 시내를 돌아다니고, 영화제를 준비해야 하는 작은 섬을 오간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숱하게 밤의 터널을 지나간다.



그리고 미사키(미래)는 그를 위로한다. 각자에게 일어난 과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감정에 솔직해야 져야 한다. 그래서 차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가고, 마침내 미사키의 고향이자, 5년 전에 산사태로 쓰러진 집에 도착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거기에서 죽었다.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래서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I) Drive my car [내가 내 차를 운전한다.] / Drive my car! [내 차를 운전해] 주인공이 움직이는 동선은 마치 연극의 등장인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움직임에는 늘 차가 사용된다. 엔진이 있는 한, 차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옐라>는 조금은 오래된 영화다. 2007년 독일에서 개봉했지만, 국내에서 접하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페졸트 감독의 초-중기 작인데, 개인적으로는 올 가을 열렸던 그의 감독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파산한 남편을 떠나 직업을 구한 ‘옐라’가 하노버에서 취직을 하게 되지만, 곧 취업사기를 당하고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다른 남자와 함께 파산 직전의 기업들을 돌아다니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빨강은 열망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낡은 빨간색 랜드로버를 모남편을 떠나, 그녀는 매끈한 빨간색 아우디를 타고 새로운 남자와 일을 시작한다. <피닉스>나 <운디네>에서 페졸트는 사랑이야기를 주 담론으로 내세웠지만, 시간을 좀 더 돌린 2000년대 초중반에는 ‘돈’과 ‘일’이 그의 가장 주된 관심사였던 것 같다. 어차피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한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직업이 없으면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유럽 쪽 사람들의 성이 그들의 조상이 가졌던 직업일 경우를 생각해보면 재밌다.) 그래서 옐라는 파산(직업이 없어진/돈을 벌 능력이 없어진)한 남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를 찾는다. 그녀도 그와 같이 다니면서 회의를 참석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영화에서 그녀가 가장 기뻐하던 순간은, 남자와 다른 도시로 옮겨가기 전 그녀 아버지와의 통화다. “저 일하고 있어요. 우리는 같이 다른 도시로 가요.”



옐라는 영화 내내 빨강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색 차를 타고 다닌다. 카는 그녀가 바라는 어떤 자본주의, 직업에 대한 열망과 돈에 대한 욕구가 집약된 존재처럼 보인다. 이것 역시 돈으로 사야 하는 물건이고, 스포츠 카는 부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연달아 저지른 실수로 결국엔 추락한다.



책에 비해 영화가 강렬할 수 있는 점은 시각적 이미지를 직접 보여준다는 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으나, 이미지를 제공하진 않는다. 반대로, 영상 매체는 (내가 알기론) 그런 상상 속의 이미지를 연출이나 감독이 직접 제공한다. 그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든, 무작위 성이 가미된 것이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한 두 영화는 ‘빨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빨간색 차를 사고 싶어 졌다. 1편에서 해치백을 사고 싶다고 말했으니, 결론은 이렇게 된다 : 나는 빨간색 해치백을 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전,2017>과<그린 나이트,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