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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Dec 25. 2021

연말특집 : 차에 대하여 1, 올해 내가 사랑했던 차들

<이니셜D>의 TOYOTA AE86, <드라이브 마이카> SAAB 900


첫 차를 산지 이제 2년이 다 돼간다. 회사 사업장을 옮기면서 전세를 구했고, 출퇴근을 하기 위해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구입했었다. 한국인은 세단을 좋아해, 라는 말과 다르게 난 늘 해치백을 좋아했다. 폭스바겐 골프나 도요타 프리우스 같은 것들. 색깔은 하얀색 혹은 검은색. 그 두 색이 조합된 투톤이라면 더 좋았다. 그런 면에서 일본 만화 <이니셜 D>의 주인공인 후지와라 타쿠미가 모는 도요타의 판다 토레노(AE86)는 나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사실 이전까지 만화를 본 적은 없었고, 검색했을 때 나오는 몇 장의 사진으로만 보고 그 차를 좋아했는데, 올 가을 구독하는 OTT 서비스에서 이니셜 D의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어 늦게나마 그걸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아키나 산(山)에서 공도 레이싱을 즐기는 드라이버들에게 다운힐 스페셜리스트(고개를 가장 빠르게 내려오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AE86이었는데,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두부가게 일을 도우려 매일 고개를 넘나드는 고등학생 타쿠미였다는 설정. 그리고 사실 타쿠미의 아버지 역시 젊었을 적 공도 레이싱을 한 전력이 있었고, 두부집의 판다 토레노는 겉모습과 다른 엔진과 구동 시스템을 갖춘 훌륭한 레이싱 머신이라는 점도 재밌었다. 그리고 차의 옆 문짝에 태연하게도 藤原とうふ店(自家用) [후지와라 두부점(자가용)]이라는 마킹이 되어있는 점도.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새로 산 나의 스마트폰의 화면에 그 문구를 띄워 AE86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12월 24일) 조조영화로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다. 전작 <아사코>와 <해피아워>를 감명 깊게 봤었고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가 올라 있었다. 무엇보다도,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보았던, 강렬하면서도 차분한 빨간색의 차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차는 지금은 없어진 스웨덴의 SAAB社에서 만든 900이라는 단종된 모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차 역시 AE86처럼 3 도어 해치백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에 또다시 나는 빨려 들어갔다. 



영화에선 인물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대화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차’라는 공간은 주인공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자, 자신의 삶의 루틴이 녹아 있기도 하면서 사별한 옛 아내를 기억하는 장소 그리고 누군가의 일터이자 사람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차체의 색깔 때문인지 멀리서 차가 이동하는 것을 찍는 장면에서는 그 차 만 눈에 들어왔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은 히로시마의 검은색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SAAB 900도 멋있었고, 등장인물 중 한 명의 고향인 홋카이도에서 눈이 아득히 쌓인 동네에 정차된 SAAB 900은 탄성이 나오는 설경에 방점을 더했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한다, 라는 영화 마지막 부분의 대사처럼 차는 지속적으로 움직였고, 주인공의 연출한 연극은 계속됐으며 삶 역시 계속됐다.



그래서 다음에 새 차를 구입하게 된다면 역시나 해치백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3 도어에 약간은 스포티함을 더한 것으로. 과거에서 현대로 오면서 차의 디자인이 점점 공기저항을 덜 받는 유선형으로 바뀌어 갔지만, 그래도 나는 각진 디자인이 좋다. 차는 빠르게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성능만 보장된다면 그다음부턴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변해가면서 몇몇 자동차 회사들은 이전에 히트를 쳤던 복고 디자인의 콘셉트카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배터리가 들어간 바닥만 플랫폼화를 시키고, 차체만 바꾸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근 미래엔 구매자가 원하는 디자인이 있다면 그것으로 자유롭게 차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는 AE86을 고를지, SAAB 900을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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