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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13. 2022

2521

후기

스물하나와 스물다섯이 지난지도 이제 한참이 되가고, 드라마 또한 마지막 방송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마지막 화를 봤다. 스물다섯스물하나라는 8자리의 제목 대신 숫자로는 단 네 글자만 써도 되는 탓에 2521이라고 불린 그 드라마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불신이 컸던 터라, 드라마가 시작할 때는 잘 안보곤 했다. 내용이 심오하기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주로 한국 드라마들은 시청률에 초점을 맞춰서, 약간은 판타지같은, 현실에 없을 법한 이야기를 내세웠고 (15~20회 내외의 것들) 그것들은 (거의) 대부분 억지로 러브라인을 형성했다. 그리고 몇몇 드라마는 스타성에 기대서 그냥 멋지고 예쁜 장면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서른셋의 인생동안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는 몇 없다. 몇 개를 나열해보면 <하얀거탑> <솔약국집 아들들> <미스코리아> <역도요정 김복주> <또 오해영> 정도랄까. 그러다가 이번에 2521을 접하면서 <역도요정 김복주>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껴서 재밌게 시작했다. 


현실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김태리의 연기력과 초반의 주인공 인물끼리의 갈등 장면이 큰 역할을 했다. 같은 동갑의 펜싱 선수로서의 동경하는 사람이자 라이벌 관계였던 고유림과의 관계와, 자신보다 네 살이 많지만 특별한 계기로 딱히 오빠라고 하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는 백이진의 관계. 청소년과 성인 언저리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안, 그 때라서 생길 수 있는 어떤 서투룬 감정들과 나희도와 백이진의 그 서투룬 사랑들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드라마 회착 점점 지나갈 수록 아쉽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것은 크게 두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데, 그 중 첫번째는 고유림의 케릭터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게 천사처럼 대하는 그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딱 한 번 패배를 안긴 나희도를 기억하고, 그녀가 자신의 고등학교로 전학왔을 때 그렇게까지 차갑게 굴 이유가 있었는가? 초반 극의 동력중 하나가 그 둘의 신경전도 한 축을 담당했지만, 그 축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의 감정적 정당성은 (나에게는)부족했다. 두번째는 백이진의 케릭터. IMF로 집이 망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결국 기자가 되는 그. (연대)공대를 중퇴하고 기자가 됐지만, 그가 이토록 기자일에 매달리는 이유를 좀처럼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가는 '고졸'도 그렇다. 이력서에는 졸업을 하지않아 적지 못했겠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그의 사정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 수도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를 보면서 '고졸'취급을 하는 것을 보며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자로서의 사명감. 극 후반부에는 나희도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도 일과 사랑에서의 어긋남임을 알 수 있는데, 내가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그가 '처음' 기자가 될 때 방송국에 지원한 이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방송반 이력이 있고, 대본을 쓰고 읽었던 경력은 있지만, 지방에 내려가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어느 순간 수습기자가 되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정말 '어떤 마음'으로 기자에 지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현재'와의 교점. 응답하라 시리즈를 거치면서 어느정도는 이런 이야기가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굳이 40대의 나희도와 그의 딸이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현재와 과거에서 풀어야할 수수께끼(예컨데, 누가 누구의 남편이냐?와 같은 떡밥)도 없었고, 과거의 인물 중 현재에도 나오는 인물은 나희도와 그의 가족 셋 뿐이다. 이미 중년의 나희도가 딸을 부를때 그 딸의 성이 '백'이 아님을 보면, 나희도와 백이진의 연애 결말은 당연히 '헤어졌다.'라고 이미 알 수 있었다.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나이든 나희도의 독백이나 마지막 회에서 나오는 해변가에 놀러간 장면들은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 자신의 아이에게 '나도 젊을 땐 저랬었지...'라고 라떼를 시전하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드라마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젊었을 적 했었던 첫 사랑의 기억.'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현재와 연결시킨 뒤 저런 독백을 넣어버리는 순간 그것들은 낡은 것이 되어버리고 모든 사람이 한 번 쯤은 겪었을 것을 '과거'로 치부되어버릴 염려가 생긴것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라 아쉽다. 91년생이 나로서는 98년에서 2000년대 초반은 명확히 기억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하는 재미도 있었고,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했던 <완다 비전>처럼 오프닝 장면을 레트로 하게 꾸민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희도의 캐릭터. 지인의 말로는 정말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한'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좋은 거 좋고 싫은거 싫다고 말 잘 못하는 나와는 정 반대라 마음 한 편에서 동경하면서도 '저런 성격이 실존하면 재밌겠다'라고 상상하며 미소지은 장면들이 많았다. 


사실 김태리가 나오는 작품들은 보기가 망설여질때가 있다. 남들이 믿던 말던, 전여자친구의 이미지가 김태리를 닮았었다. 이미지도 그렇고, 특히나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그와 만났을 때의 설렘이 느껴져서 더 생각이 났다. 과거에 갇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익숙하고 그리운 것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배우 김태리'도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챙겨볼 생각이다. 작품 고르는 눈은 좋은 것 같아서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승리호>를 제외하고는 다 중간 이상이었다. (<아가씨>는 매우 좋았다.) 어쨌든, 이제 모든 이야기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도 어제를 기점으로 3주간 재밌게 봤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못봤다.(라고 핑계를 댄다.) 그녀와 헤어진 것은 이제 삼 년이 넘어간다. 누군가가 헤어진 것을 후회로 생각한다면, 나는 당연히 후회한다고 대답한다. 근데 거기에는 '계속 사귀었어야 됐는데.'라는 감정보단, 나에게도 그 시절 그만큼 나를 생각해준 사람이 그 사람 뿐이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는 후회가 된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이미 지나온 일이고,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그랬던 것 처럼. 다행일진 모르겠지만, 나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식에게 넘겨줄 다이어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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