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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23. 2022

고무동력기

저번 주말엔 본가가 있는 오송에 내려갔다. 아침이 끝나기 전에 운동화를 신고 나가선 호수공원 주위를 달렸다. 날씨는 좋았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나와 태양빛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씽씽카(요새는 그렇게 안 부르나?)를 몰고, 공을 차며 놀았다. 그러다가, 고무동력기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봤다. 그러면 나는 한 이십 년 전쯤의 초등학생일 때의 내가 생각났다. 4월에 있는 과학의 날이면 꼭 고무동력기로 경주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얇은 대나무(인지 다른 나무인지)는 휘어있었고, 상품마다 길이가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위엔 종이에 풀을 발라 붙여야 했는데, 초등학교 2~3학년의 고사리손이 하기에는 약간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고무동력기의 완성도는 그 집의 부모님(주로 아빠였을까...)의 손에 달려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저런 제작 조립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고무동력기는 이름답게 꼬인 고무가 풀리면서 돌아가는 프로펠러의 힘으로 날았다. 저학년들은 교실에서, 고학년들은 학교 옥상에 올라가 날린 뒤 체공시간이나 얼마나 더 멀리 갔냐로 비행기의 훌륭함을 판단했다. 나는 그 힘을 다시 생각한다. 비행기가 날아갈 수 있는 그 근원적인 힘. 그것은 프로펠러를 돌리는 고무줄에서 나왔고, 고무줄에 저장된 힘은 '탄성'이었다. 고무줄이 끊어지지 않고 버틸 만큼 돌리면 그 힘이 저장됐다. 그리고 손을 놓는 순간,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고무줄이 다시 자신의 몸을 역방향으로 돌리며 프로펠러가 돌아간다. 여기에 약간의 앞으로 가는 힘을 주며 던지면, 몇 초간 날 수 있는 비행기가 되는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힘이 있다. 고무동력기의 경우엔 사람의 힘이 고무줄의 탄성으로 저장되고, 그것이 프로펠러의 회전으로 치환된다. 힘과 에너지는 이렇게 그 소스(Source)를 옮겨가며 작용한다. 발전소도 거시적으로 보면 대충 이런 식의 원리일 것이다. 화력발전은 연료를 태워 나오는 열로 물을 데운 뒤, 그 수증기가 터빈을 돌리고, 그 터빈이 다시 코일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수력과 풍력은 액체와 기체가 각각 프로펠러(터빈)를 돌려 코일을 돌려 전기를 얻는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날지 못하는 고무동력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나에게로 온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얼까. 이성적으로 보면 그것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으로 얻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의 근원은 내가 마시는 공기와 음식에서 왔을 것이다. 액체와 고체와 기체가 만나 세포 발전기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적절한 변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힘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때로 사람을 덮치는 무기력함은 물리나 화학의 법칙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 문제는 정신으로 귀결된다. 


동력기의 고무와 마찬가지로 가끔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를 느낀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열정으로 넘쳤을 신입사원 시절과 같은 순간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계속해서 돌아가는 시계처럼 돌려진 개개인의 고무줄은 가끔 너무 팽팽하게 돌려서 여유가 없다. 그 상태로 손을 놓는다면, 어쩌면 너무 빨리 돌아가다가 비행기가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요새 내 근처의 사람들은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에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물리나 화학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저번 주 주말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송 호수공원을 세 바퀴 돌았다.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내 몸의 세포들은 하루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발전소를 돌리고 그 열을 발산했다. 그러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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