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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y 21. 2022

그러게나 말입니다.

너의 이러한 행동의 이데올로기는 뭐냐?
 
 전주 국제영화제를 갔다 오며 구입한 100개의 작은 포스터를 넘기다 발견한 질문. 장선우라는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이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임이 짐작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주연배우로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강수연 배우와 문성근 배우가 나온다. 상당히 아방가르드했다는 평론가들의 평을 보고, 저 질문과 나의 연관성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반항적이다.

중학교 때는 가정통신문으로 진행된 두발자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담임은 종례시간에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디에 표시해야 되는지 알지?’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두발의 길이와 성적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라는 말을 중학생식으로 표현한 뒤 ‘반대’에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해서 적어냈고, 담임은 점심시간에 나를 불러 왜 그랬는지 물어봤지만 나는 그와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입을 꾹 닫은 채 30분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회사에서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불합리와 부조리가 이렇게 많은 것 같은데 말을 해봐도 안 먹힐 바엔 내 마음 편하게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저 예전부터 그렇게 해온 거니까, 그게 이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니까, 라는 말이 나는 너무 싫다. 논리는 부족한데 관례로 여겨지지만 효율적이지 않은 것들을 보는 것이 싫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저항(Resistance)의 마음이 가득함을 느꼈다.

나는 한편으론 정치적이다. 사내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렇다. 내가 퍼줘도 되는 사람들 / 적당히 주는 만큼 받을 사람들 / 관심X로 나눠서 행동하면서도, 3그룹(관심X)에 속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또 어디서 만날 지도 모르니까, 나에게 엄청 큰 해를 입힌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허허, 하고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낸다. 

이데올로기라 함은, 어떤 사상일 것인데 정치적으로는 나는 사회민주주의를 원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정치성향 테스트를 하면 그것보다는 약간 빗겨있는 사회자유주의가 나온다. 나는 나 자신보다 조금 더 좌측을 원하지만, 실제 행동과 무의식의 무게 추는 거기까지 향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본인들의 아이덴티티와는 전혀 동떨어진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어떤 집단보다는 낫겠지만. 그래서 정치가 기만의 언어라고 했었지.

어쨌든 나는 자본주의에 종속적인 사회를 싫어하면서도 어쨌든 나도 그 자본주의 덕택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집에 빚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름 괜찮은 회사를 다녔었으니까, 그래서 전세 대출을 할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모았던 거고, 차도 사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도 있었던 거고, 이 모든 것을 되팔고 나서 나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아직은 생각 중인)이 실현되고 있다(라고 하지만 막상 가면 또 투덜 되겠지)라고 생각되는 나라로의 진출을 생각할 수 있었던 거겠지. 정리를 어떻게 해야 될 진 모르겠지만, 나는 빨강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그 색을 표상하는 이데올로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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