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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16. 2022

청소

유투브로 무슨 영상을 보느냐는 질문을 가끔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주로 구독한 채널들은 과학관련 (안될과학/과학드림/3BrownEyes 등)과 게임관련(침착맨/크랭크)와 독일방송 및 뉴스가 있다. 근데 몇 달 전 부터 가끔 검색해서 보는 것이 있다. 조금 더러울 수도 있지만, 블렉헤드/귀청소/표피낭종과 같은 의학관련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의학관련이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청소'하거나 '제거'하는 영상이다. 나도 가끔 여드름을 짜거나 블렉헤드를 제거하긴 하지만, 그 영상들을 보면 무언가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이나, 그 사람을 괴롭혔었던 어떤 눈에 보이는 물체들이 뽑여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곤 한다. 비록 가끔은 더러운 장면이 나와서 속이 거북해질 때도 있지만. 어떤 블랙헤드는 너무나 깊고 오래 박혀있어서, 겉으론 봐서는 얼마 안 클 것 같은데 엄청나게 큰 뿌리를 가지고 일 때도 있고, 어떤 이는 이제는 손도 쓰지 못할 만큼 큰 낭종을 몇 년 째 가지고 있어서 외과의에게 수술적 방법으로 제거를 받을 때도 있다. 


신체도 어쨌든 생물이다. 무언가를 먹었으니 무언가가 나오고, 무언가는 쌓인다. NET을 구하는 공식은 늘 동일할 것이다. Sum(들어온 것) - Sum(나간 것) = NET. 하지만 그 NET에는 나에게 유해한 것들이 있고, 그게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정신적이든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비록 영상에 있는 것들이 내 것이 아니지만, 먹방을 보면서 포만감을 채우듯, 제거방송을 보면서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더러운 것들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뭔가 모를 쾌감이 느껴진다. 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이런걸 보니까 유투브에도 그런 영상이 올라오고 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걸 꺼다. 


어쩌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뿌리부터 다 바꾸고 싶어버리고 싶은 나의 성향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것을 잘 참지 못했다. 미봉책. 그리고 대충 넘어가는 것들. 시간이 없다고, 지금만 넘기면 된다고 근본적인 것은 그냥 두는 것들. 할 수 있는데 하지않고 넘어가는게 제일 나쁘다고 생각했기에, 표피 몇 mm안까지 빼곡히 쌓인, 그리고 것표면은 산화되어 거멓게 변해버린 피지 덩어리가 뽑혀져 나오는 걸 보면 나도 현실의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송곳을 찌르고 가차없이 근본 원인을 뽑아내는 테라피스트가 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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