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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19. 2022

6년의 밤

어딘가를 다시 찾는 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독일에 다시 와서 일기를 쓰는 동안 여러가지 과거의 일을 쓰기도 했고, 머리속에 과거가 떠오르기도 한다. 6년 전은 뮌헨, 12년 전은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에 있는 나로서는 공간적으로 처음 경험을 했던 건 12년이지만, 독일의 느낌을 마지막으로 느낀 건 6년 전의 나였다. 그래서 지금은 6년 전의 일에 대해 쓰고 싶다. 24개월 간 공익으로 일하면서 모았던 240만원으로 다녀온 약 14일간의 여행. 그땐 체코-오스트리아-독일을 갔었고, 독일은 뮌헨과 뉘른베르크만 방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행에서 뮌헨에서의 추억은 좋지 않았다. 호프브로이에서 20분 간 있었지만 종업원이 주문을 받지 않아 나는 굉장히 화났었고, 뉘른베르크에서는 괜히 걷는답 시고 뉘른베르크링(서킷) 근처의 공원에 들어갔다가 두 시간을 걸었다. 중간에 겨우겨우 조깅을 하는 사람들 만나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냐고 물어 중앙역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이에 반해, 체코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추억은 너무나 좋다. 당시 나는 독일 이외의 나라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체코에서 받은 느낌은 독일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말도 다르고, 사람들 분위기도 다르고 가장 중요한 물가가 달라서(저렴해서) 좋았다. 그리고 당시에 마인츠에서 교환학생을 와있었던 대학교 동아리 후배와 프라하를 다니면서 재밌게 다녔고 (비록 사진을 많이 찍어주느라 살짝 힘들었지만...) 아직도 체코의 주황색 지붕아래 펼쳐진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체스키 크롬로프라는 소도시에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그땐 그냥 나 혼자 당당하게 버스로 갔다올걸... 이라는 후회는 남는다. 한인민박에서 주인아저씨가 투어를 받는 것을 신청했었는데, 가이드도 별로였고 돌아오는 길엔 버스 전용차선으로 올수도 없었고 비도 너무 많이 오고, 에어컨도 고장나서 너무 더웠던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빈에서 나와 동갑인 동행을 만나서 재밌게 돌아다녔다.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구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문화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무작위로 만난 사람이었지만 결이 비슷한 것 같아 좋았다. 마침 빈에서 짤츠부르크를 넘어가는 일정도 비슷하고, 알고보니 예약한 숙소도 같아서 동행을 이어서 했다. 할슈타트에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알프스의 전경이란 이런것인가... 호수 옆의 풍경은 너무나 멋졌고 갈아입을 옷만 있었다면 수영도 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그 친구와는 헤어지고, 인스부르크부터 뮌헨까지는 다시 나홀로 여행을 했다. 


사실, 인스타그램을 처음 깐 것은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동행 덕분이었다. 페이스북은 이미 시들시들해졌고, 나도 끝이없는 광고화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요새는 이런걸 한다며 알려줬고, 동행이 끝난 후 그것을 설치한 뒤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올린 사진은 체코의 마스코트 인형을 가방에 맨 사진이었다. 미국으로 따지면 미키마우스쯤의 위상을 가지는 체코의 두더지 캐릭터는 아직도 내 방에서 잘 살아 있다. 그리고 같은 SNS에서 오스트리아 동행을 같이 했던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행을 갔다오고, 몇 번 연락을 하고 딱 한 번 그녀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가 여행이 끝난 직후였으니 벌서 6년 전이다. 축하할 일이지만 선뜻 하트를 누르긴 어려웠다. 마지막 연락이 6년 전이었고, 그 뒤로 나는 일 년 동안 취준에 들어갔다. 공백이 긴 것도 있었지만, 사실 오스트리아에서의 시간동안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었다. 이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멋있었고, 그게 문화계인 것도 좋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시간을 다시 되짚어 보니, 짤츠부르크에서 둘째날 홍상수와 김민희가 밀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시네필까진 못되어서, 홍상수의 영화를 잘 알진 못했을 때였다. 두 사람의 나이차도 그때 검색을 해봐서 알았다. 뭐, 덧붙이자면 얼마전 베를린영화제에서 <소설가의 영화>가 심사위원 대상인 은곰상도 받았지. 나는 얼마전에 그 영화를 봤고, 다다음주 주말에 팟캐스트에서 그 영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쨌든, 그때에도 나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좋은걸 좋다고도 말 못하고, 역시나 생각이 너무 많았었다. 동행도 처음이고, 남들이 가끔 겪는다는 타지에서의 로맨스가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 연애도 해보기 전이라 그런 감정에 더 서툴기도 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넘어오기 전 이탈리아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다른 동갑인 친구가 사진을 매우 잘 찍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나온 사진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게 갑자기 기억났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인스타그램 몇 개를 봤다. 나의 감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와 결혼하는 것 같았다. 결혼식은 내가 독일을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지금은 다 과거의 이야기고, 나도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재밌는 건, 가끔 올리는 스토리를 보면 그녀도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온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6년을 다시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과연 6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가. 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무직인 건 같고, 독일어를 어중간하게 한다.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맥주도 좋아한다. 달라진건 이제는 구렛나루에 흰머리가 많이 났다는 것과 사랑에 관해서 어느정도는 순수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바뀌어야 겠다.'라는 말을 글로만 쓰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아는 정도인 것 같다. 여름의 독일은 해가 굉장히 길다. 일출시간을 따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새벽 다섯 시에는 해가 뜨는 것 같고, 일몰시간은 아홉시 반 쯤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밝으니 밤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야경을 보기도 쉽지 않다. 해가 뜬 후에 밖으로 나가고, 해가 지기 전에 안으로 들어온다. 이건 6년 전도 마찬가지다. 6월의 밤은 짧다. 7월은 더 짧아질 것이다. (아마도?) 독일어 현장수업은 7월에나 시작되고, 내가 7개월 이상 지낼 집도 7월에나 입주한다. 그 전까진 나는 붕 뜬 생활을 계속 해야한다. 호텔에서 누군가가 갈아주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누군가가 비워주는 쓰레기통에 플라스틱 따위를 버린다. 그래도 재밌는 건, 6년 후의 나의 모습이 궁금하다. 6년 전의 나는 이럴 나를 상상이나 했을 까? 지금 내가 상상하는 6년 후의 나는 뭐랄까... 공학박사가 꼭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직업적으로는 그렇고, 아마도 지금보다 영화를 300편은 더 봤을 것이고 영화에 대한 책도 하나 썼으면 좋겠다. 늘상 행복하긴 힘들지만, 해가 지기 전의 이시간에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다 좋은 밑거름이 돼서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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