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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27. 2022

소리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독일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를 좋아한다. 아마도 첫번째는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주인공의 엄마가 갑자기 심장 발작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배경음으로 깔렸던 그 사이렌의 소리가 좋았다. 좋았다, 라고 말하는 게 조금 이상하다. 사이렌은 보통은 사람 귀에 찌르면서 '경고' 내지는 길을 비켜달라는 모종의 신호로서 거슬려야 할텐데. 사이렌 소리에 내가 다른 소리보다 더 관심으 갖는 이유는 그것이 도플러 효과와 관련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동하는 물체가 어떤 파동을 발산할 때, 듣는 이 (또는 보는 이)와의 위치 변화에 따라 신호가 다르게 들린다는 것, 그 사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천체의 시각에서 도플러 효과를 설명하면 그것이 '적색편이'가 되고, 일상생활로 들어오면, 사이렌소리가 멀리서 들릴 때와, 나를 지나쳐서 갈 때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의 한 지점에서 나는 여러나라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고, 독일 사이렌 소리가 가장 좋다는 생각을 유지했다. 


어제는 태국 감독의 영화 <메모리아>를 봤다. 영화의 극 초반,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이상한 굉음에 깬다. 그녀는 음향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재현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엔 자동차에서 갑자기 울리는 도난방지벨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소리를 듣고, 그 근원이 어디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느날 병원에 들렸다가 들린 어떤 개천을 따라가면서 그 소리를 또 다시 듣고, 어떤 남자를 만난다. 그 쇼트 이후로 그녀가 그런 소리를 듣는 이유가 어느정도는 밝혀지고, 영화는 끝으로 달려간다. 그녀를 잠을 자지 못하게 깨운 소리의 정체는 어떤 초감각적인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 자막 없이 보는 바람에 더 자세한 해석은 못하겠다. 


독일에 도착한 이후, 아직은 여행자모드가 안풀렸는지 이어폰을 잘 안끼고 다녔다.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잠깐 할때나,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만 잠깐 줄이어폰을 쓴다. 그래서 요샌 평소보다 일상의 소리에 귀를 귀울인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아침이나 저녁 호텔 창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들. 아이 웃음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도로가 막혔는지 경적소리가 몇 분 째 올리기도 한다. 이 도시의 소리와도 이제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또 하나의 영역에서 적응할 수 있는 거겠지. 그래도 저녁에 잠들기전엔 유투브나 팟캐스트를 듣다가 자곤 한다. 내가 미래로 가면서, 나에게 찾아오는 파동들은 어떻게 바뀔까. 현재의 소리들이 살짝은, 이방인을 향한 경계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엔 이것도 어떤 '편이'를 거쳐서 나에게의 '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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