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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l 02. 2022

두 가지 이유

언젠가부터 해외를 가도 감흥이 없어졌다. 첫 번째 이유는 이미 한 번 와봤으니까, 그때만큼의 신비로움을 못느끼는 것에 있다. 반복은 지루함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순수함을 제거해버리기도 한다. 맨 처음 서양식 건물을 보고, 거기에 지어진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왕궁과, 입이 딱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공원. 그러나 여행을 두 번, 세 번 반복할 수록 여길가나 저길가나 조금은 놀라도 크게 달라지 않는 걸 체감한다. 내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아주 새로운 문화권(아랍/이집트/남미)가 아니라면 이것은 계속 지속될 것 같다. 이것은 문화 사대주의가 희석됐다기보단, 익숙함에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감흥이 없고, 부산에 사는 사람이 부산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부산을 더 모를 수도 있듯이. 유럽인들도 태어나서 본게 계속 이거였으니까, 당연히 그들도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이것저것을 볼테니까. 아마도 이런 지루함을 더 가지고 있진 않을 까 생각한다. 그리고 순수함을 잃는 다는 측면도 이와 연결된다. 첫사랑과 다음 사랑의 느낌이 다른것, 신입이었을 때와 다른 곳을 경력으로 들어갔을 때의 일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따위의. 신인상을 딱 한 번 받을 기회가 있고, 그 시기를 넘어가면 더이상 기회가 없는 것가 비슷하게, '첫 번째'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인상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충 이 첫번째 이유를 두 가지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1)인간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2)인간은 살아가며 순수함을 잃는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던 것에 있다. 이것은 아마 내가 공익을 끝내고 두 번째로 유럽을 왔을 때 생긴 느낌이었는데, 뮌헨의 어느 술집에 혼자 앉아 주문을 시킬때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고, 약간은 퉁명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때 정확히, 그사람과 동일한 나이를 가진 한국의 어떤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직접 봤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어떤 인간 군집속에서 찝어낼 수 있는 소그룹의 인물. 사람이야 당연히 각 개체가 다르지만, 그래도 범위를 좁히고 좁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스트레오타입에 해당하는 기저. 나는 그 기저를 독일의 아주머니에게 겹칠 수 있었고, 그 순간 그가 그냥 동네에 있는 치킨집에서 혹은 광장시장 빈대떡 집에서 볼 수 있는 아주머니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찌보면, 지금으로선 어떤 문화적 차이나 아예 새로보는 인간 유형이 아니라면 어떠한 인간을 봐도 인식의 차원으로서는 그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 (물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늘 있다.) 내가 모르는 말을 하거나 지껼여도, 그냥 어떤 범 지구적인, 인간이라는 종에 대입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해외를 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인 "여기도 다 사람사는 대라 다 똑같아요."라는 말이 이러한 감정들을 모두 응축한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비록 어제 새로 입주한 집의 관리인을 처음에 봤을 때 독일어가 잘 나오지 않고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니까. 그냥 한국 대신 독일에서 태어난 거고. 우리나라로 따진다면 음...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관리소의 아저씨를 적절히 합친 존재라고 할까. 


그리고 이것이 모두 경험에 의한 나의 변화라고 느꼈다. 내가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하기 않았었다라면, 이런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집 근처의 장벽공원(Mauerpark)를 뛰었다. 아침 7시 30분. 햇살은 그래도 뜨거웠는데, 드문드문 나와같이 운동화를 신고 뛰거나, 개와 같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지. 뛰는 사람들 끼리 마주치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응원하는 말을 하게된다. 이 시간에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은 보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마개와 목줄이 없이 다니는 걸 보면서 나에게 어떤 해가 올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개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지금은 카페에 있다. 나는 햇빛을 피해서 안으로 들어왔지만, 다른 이들은 밖에 나가 햇빛을 쬔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우린 모두 지구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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