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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l 04. 2022

좁고 깊은

여행을 온 건 아니지만, 해외에 있어서 여행에 기회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오늘은 여기서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좁고 깊은 여행을 하는 편인 것 같다. 첫 여행을 유럽으로 왔을 때도 그랬다. 내가 대학생일 때는 한창 유럽 여행이 유행이던 때라, 많은 친구들이 방학 때 한두 달 씩 해외로 나가곤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돌려보면 런던이나 로마로 인을 하고, 각각의 코스를 정주행 혹은 역주행을 한 뒤 런던이나 로마로 또 다시 아웃을 하는 코스가 많았던 것 같다. 언제 또 유럽을 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온 김에 많은 나라를 봐야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무려 독일만 20일을 갔다. 여기엔 나의 원초적인 쫄보 성격이 한 몫을 하는데, 21살의 나는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있었다. 비행기의 추락 같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 유명한 관광지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걱정… 


그래서 20일 간 있으면서도 독일의 도시를 단지 6곳만 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최소한 3일 간을 머물면서 그 도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을 만나면 여행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때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요 관광지 혹은 맛집(이라고 소개된)을 가고, 그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활동적이진 못한 사람이라 주로 정적인 것을 많이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도시를 가면 먼저 살펴보는 것이 여기에는 어떤 박물관/미술관/과학관이 있는지를 본다. 감사하게도 독일에는 박물관이 많아서 가볼 곳이 엄청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한 편으론 나의 여행이 아쉽다. 예컨대, 스위스를 가서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유럽에서 콘서트를 즐기고, 분위기 좋은 재즈바를 가는 것. 사람들이 이런 것에 대한 후기를 인터넷에 올린 것을 가끔 접할 때마다 나는 여행을 적게 다닌 것도 아닌데, 왜 저런 걸 못해봤을 까라는 후회를 한다. 


그것은 역시나 나의 원초적인 선택적 게으름에 있다. 박물관 같은 곳은 목적지를 찍고, 가서 표를 사고 들어가서 보면 되는데, 앞서서 말했던 것들은 그 활동에 이를 때 까지의 수고가 귀찮다고 생각했다. 어디 홈페이지에 가서 표를 예약하고 (그럴려면 또 회원가입을 해야하겠고) 인터넷으로 결제를 하고, 그리고 또 그 장소까지 찾아가는… 기본적인 지도 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아서 대부분의 경우는 애초에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새로운 걸 해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것에 동경이나 부러움을 가졌던 걸지도 말이다. 그래서 이런 행동양식을 토대로 나의 여행을 정의해보자면, “여행에서 다양한 경험을 즐기는 것에 대한 행동력”은 좁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것의 대척점으로 “여행에서 한 장소를 이해하려는 행동력”은 깊다. 


말이 길었는데, 이렇게 나의 여행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보니 이런 나의 좁고 깊은 특성이 여행에만 적용 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문화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연극의 경우에도 이곳저곳 찾아다니기 보단 국립극단이나 두산아트센터에서 올려지는 연극만 주로 봤었다. 그리고 한 번 연극을 보면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글을 쓰곤 했다. 여기서의 좁고 깊음을 정의해보자면 

[좁음 : 작품을 보는 장소] [깊음 : 작품을 본 뒤의 감상]

이것을 나의 사랑에 대한 방식에서 정의해보면, 
[좁음 : 이성에 대한 접근력/행동력] [깊음 : 관계가 맺어진 후의 타인을 대하는 것]

한편, 지식에 대해서도 정의하면 이렇다.
[좁음 : 잘 모르는 것을 찾아보려는 노력] [깊음 : 아는 것에 대하여 더 생각하는 힘]


결국 나는 처음에는 우물을 파는 사람인 걸까. 사람의 성향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만, 내 단점은 시작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가다가 막히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도 (적어도) 나는 다양성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천천히 해내는 사람이니까. 물이 있는 곳만 잘 찾아내서 끌어올리는 대에만 성공한다면, 그것을 더 넓혀서 언젠가는 호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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