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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l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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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오늘은 살짝 우울하다. 큰 이유는 아니고 어학원에서 2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들었던 말때문이다. 아침에만 해도 다음 반으로 온걸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았는데, 수업 중간 쉬는시간에 갑자기 선생님이 오더니 나에게 다음반을 올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왜지? 무슨이유지? 실은 그 순간 짐작했지만, 나의 회화/말하기 실력이 지금 단계가 아닌 것 같다는 선생님 자신의 판단이라고 했다. 이 말은 저번주 수요일에도 들었다. 다른 유럽에서 온 수강생들보다 나의 발화가 잘 안된다고. 아예 일대일 회화집중 수업을 듣는 건 어떻냐고 했으니까.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독일에 온 지 한 달 밖에 안됐고, 생활독일어를 시작한 건 이제 막 이주밖에 안됬으니까.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특히 아시아에서 유럽언어를 배웠을 때 말하기 능력이 부족한 건 어느정도 어쩔수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수업도 모두 한국인이고, 독일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업이 끝나면 나는 남산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온라인 수업이면 다시 내 방에 있는 한국인이니까. 읽기나 문법 같은 부분에서는 내가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에 더 화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과락으로 못 올라간 것 이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인생에서 뭔가를 공부해서 떨어진 것이 거의 없다보니 더 이번경험이 씁쓸한 것 같다. 운전면허 시험이야 감독관이 너무 깐깐했고, 신호에 잘못 걸렸다는 운적인 요소도 있지만 이번의 경우엔 순수한 나의 실력 문제였으니까. 사실 말하기가 부족한건 나의 성격도 한 몫한다. 아니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진배없다. 모국어를 할 때도 나는 말이 많다기보단 남의 말을 듣거나 글로 정갈하게 표현하는걸 더 좋아했다. 영어로는 talktive한 사람이 아니라서, opic시험에서도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나왔다. 이럴 땐 억울하다. 하지만 이건 언어고, 결국 이건 외국어고, 내가 여기서 공부를 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하려면 결국 많이 뱉어야한다. 다른 한 성격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못하는 건 잘 안하기고 한가는 거다. 말하기가 진작에 다른 것보다 떨어지는 걸 알지만, 거기에 투자하기보단 다른 것을 더 완벽하는게 힘을 쏟았다. 총점을 올리는 건 그게 맞지만, 모든 영역을 고루 하려면 옳지않다.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도 생각났다. 중학교때 나는 암기과목을 지지리도 싫어했다. 논리없이 그냥, 그저 그냥 외워야 했던 것들이 싫어서 거들떠도 안봤다. 그냥 예의상 책만 몇번 읽고 시험을 봤다. 그러니 점수가 잘 나올리가. 남들(보통의 공부하는 아이들, 전교권 아이들)이 다 80점/90점을 받을 때 나는 60-70점에서 머물렀고 걔네들이 평균 점수를 다 깎아먹었다. 고등학교 땐 다지선다었던 국사시험은 20점대도 맞아본 적이 있다. 물론 이땐 평균도 40-50점대였던 것 같지만. 그런 면에서 수능은 좋았다. 국어수학영어과학만 하면 되고, 그 과목들은 영어를 제외하면 내가 다 잘하기도 했던 것이니까. 그래서 큰 고비없이 대학에 갔고 재수도 하지 않았다. 딱히 목표로 했던 대학도 없었고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과에 가고 싶었고 그게 됬으니까. 뭣보다 수능공부를 일년을 더 한다는게 너무너무 싫었다. 똑같은 것을 되풀이 하는 것. 나는 그것 역시 불필요한 일이라고 느꼈으니까. 시간이 아깝고, 그시간에 내가 딴걸 하는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때론 반복은 필요하고 필수적이다. 지금 독일어가 그렇다. 십년 전에 배웠던 것을 지금다시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 기초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했고 출국전까지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것을 반복했다. 그러자 눈과 귀가 좀 더 뜨였다. 독일에와서 지금 단계를 처음 들었고, 전문가의 시선에선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어딘가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채워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엔진빼고 다 정상인 비행기가 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엔진을 개선해야 한다. 많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말하기를 많이 간과한다고 한다. 입학을 위해 자격증을 따지만 그것은 그저 점수일 뿐이고, 점수를 위한 테크닉일 뿐. 유학원에서 본 어떤 친구도 자신이 내가 듣고 있는 B2를  땃지만 자신은 말하는 것은 많이 못한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하고싶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자격증을 따러 온 것이 아니다. 물론 석사를 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하지만 그 자격증에 알맞는 실력도 갖추고 싶다. 그래야 내가 여기에서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나중에 혹시나 취업을 하고 살게되더라도 무시를 당하지 않고 여기의 생활에 녹아들어갈 수 일을 테니까. 그러니까 다음주부터 같은 수업을 또 듣는다고 너무 자책하지말고, 외국인들에게도 주눅들지말고 막 뱉고, 더 높은 반에 올라가서 꼬이기전에 다음 2주간의 시간이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더 큰 문제를 미리 막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을 받아 갑자기 쓰게 된 에세이 같은 반성문은 여기에서 마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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